서산 <산해별미><구옹진냉면>
서산버스터미널 근처 벤치에 앉아 잠시 햇살을 쬐고 있었다. 옆자리에는 서산 이모 두 분이 보였다. 혼자 있을 때, 옆의 대화를 엿듣는 건 마치 창문 너머로 낯선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오늘의 주제는 ‘조카가 사귀는 태안 남자’였고, 그 남자가 사는 태안이라는 땅이 어떤 곳인지가 대화의 골자였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이모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그 질문이 작은 다리를 놓았다. 나는 서산과 태안의 차이를 묻자, 이모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지도를 꺼내 펼쳤다.
두 도시는 가로림만을 사이에 둔 형제였다. 과거 행정구역을 함께 했던 만큼, 뿌리 깊은 역사와 정서가 닮아 있다. 서산은 평야와 간척지, 산지가 어우러진 내륙의 품 같은 곳이고, 태안은 모래사장과 해송, 사계절 꽃이 피는 바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지형이 사람을 빚어서인지, 서산 사람은 조용하고 태안 사람은 활기가 넘친다. 적어도 이모들의 어조에서는 서산 쪽의 점수가 조금 더 높았다.
이모들이 버스를 타고 떠난 뒤, 나는 걸음을 옆 수산시장으로 옮겼다. 바닷바람과 햇볕이 교차하는 골목 어귀마다, 반으로 갈라져 소금 간이 된 우럭이 널려 있었다. 내장이 비워진 채 햇살을 삼키는 그 모습은 바다를 잠시 육지에 걸어둔 것 같았다. 그 우럭포가 끓여내는 우럭젓국은 비린내가 없고 담백해, 술기운이 아직 뺨을 타고 흐르는 아침에 속을 부드럽게 풀어준다고 한다. 서산에 온 김에, 말로만 듣던 그 국물을 맛보고 싶었다.
선택한 곳은 수산시장 인근의 <산해별미>였다. 마침 태안에서 일하는 친구가 퇴근 후 서산까지 왔다. 우럭젓국은 서산과 태안에서만 볼 수 있는 음식이지만, 두 지역의 국물에는 미묘한 결이 있었다.
서산식은 말린 우럭포로 맑고 담백하게, 쌀뜨물이나 맑은 물에 무·파·마늘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다. 북엇국처럼 뽀얗고 시원한 국물은 해장국으로도 사랑받는다. 반면 태안식은 된장을 풀어 보다 깊고 진한 감칠맛을 낸다. 새우젓과 된장이 만나 국물의 밀도를 높이고, 땅과 바다의 맛을 함께 끌어올린다. <산해별미>의 국물은 된장을 살짝만 넣어, 무게감보다는 라이트한 청량함을 택했다. 친구는 태안식의 진함을 그리워하면서 다음에는 태안에서 만나자고 했다.
밤이 깊어 숙소로 향하는 길, 천막 안에 서 있는 장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버거를 파는 작은 분식집이었다. 다들 술기운이 남은 얼굴로, 패티와 양배추, 케첩이 어우러진 단순한 버거를 들고 있었다. 한입 베어 무니, 고등학교 매점의 그 맛이 입 안에서 다시 뛰놀았다.
다음 날 아침에 진짜 해장을 했다. 내가 고른 해장 장르는 ‘간장냉면’. <구옹진 냉면>은 밀가루와 옥수수 전분을 섞어 뽑은 면에, 오랜 시간 달인 간장과 돼지 잡뼈 육수를 섞어 만든다. 까만 국물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속을 시원하게 열어주었다. 간장의 깊은 빛과 육수의 온도가, 전날의 모든 서사를 결론내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