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포르텔라 공항>
7년 만의 포르투갈행이다. 2014년 아일랜드의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서, 매년 유럽에 방문하는 걸 다짐했었다. 해마다 유럽적 영감을 나 스스로에게 불어넣어주고 싶었다. 코로나19 시국을 제외한 올해까지 그 약속을 이어가고 있다. 늘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차년도 유럽여행지를 정한다. 올해 여행지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정해졌다. 2024년 12월, <우연히 웨스 앤더슨 2>란 전시회에서 말이다. 전시회 마지막 섹션에 ‘내가 모험하고 싶은 도시’를 정해주는 자판기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질문에 답하다가, 이 기계가 정해준 도시로 떠나면 되겠다는 모험을 걸게 되었다. 정말 무모한 도시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게 모든 질의에 답하고 나온 도시가 바로 ‘리스본’이었다. 난 바로 그 자리에 앉아 리스본행 항공권을 예매했다. 여행은 ‘본의 아니게’ 떠나는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경유지인 아부다비에 도착했다. 착륙을 무사히 마치고 휴대폰 비행기모드를 풀고 나니 당황할만한 메시지들이 들어왔다. <스페인·포르투갈 대규모 정전…인프라 '올스톱', 국가 비상사태 선포>. 나의 안위를 묻는 가족, 지인들의 메시지도 동시에 쏟아졌다. 아부다비에서 리스본으로 떠나는 출발시간이 지났는데도 탑승을 진행하지 않았다. 항공사 직원들 모두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이러다가 떠나지 못하는 건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탑승이 시작되었다. 과연 도착해서도 여행이 가능할 것인가. 예상되는 다양한 상황과 변수를 비행시간 내내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대비했다. 리스본 포스텔라 공항은 가히 아수라장이었다. 출국하지 못한 승객들이 로비에 가득찼다. 특이한 건, 현재 상황을 공항관계자에게 따지는 사람보다는 바닥에 자리 잡고 누워 ‘여유롭게’ 기다리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국가적 대정전이 일어났는데도, 생각보다 이를 대하는 국민들의 태도는 태연했다. 현재 도시는 대체 전력으로 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괜찮냐는 내 물음에 다들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안전불감증인건가. 원래 이 국민들은 태연한건가.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포르투갈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