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카사 페르난두 페소아 Casa Fernando Pessoa>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여행 중 서점에 가면, 가장 먼저 ‘한강 작가’의 책을 찾아볼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받기 이전에도 특히, 유럽 서점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이름도 ‘한강’이었다. 물론 수상한 이후에는 특별 큐레이션이 마련될 정도로 위상이 더 높아졌다. 포르투갈의 유명 서점에도 한강 작가의 책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 서점에서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온 작가는 누구일까. 바로 <페르난두 페소아 Casa Fernando Pessoa> 작가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포르투갈 문학사에서 가장 신비롭고도 다면적인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직접적인 비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이상 시인이 떠오르는 작가다. 그는 단순한 시인이 아니라, 수많은 닉네임을 만들어내어 마치 하나의 문학 우주를 구축한 작가였다. 19세기에 이미 ‘부캐’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페소아의 글쓰기는 단일한 자아가 아니라 다중적 자아를 바탕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그의 철학적 사유와 존재론적 고민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문학은 초현실과 현실, 감성과 이성, 개인과 세계 사이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복잡한 구조를 지닌다. 단순한 가명 수준이 아니라 하나의 자율적인 문학적 존재로서 활동하며, 페소아라는 개인을 넘어서는 문학적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페소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불안의 서』는 그가 평생에 걸쳐 써 내려간 단편적인 사유의 집합체다. 이 작품은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과 삶에 대한 깊은 회의를 시적으로 풀어낸 명상록에 가깝다. 여기서 그는 인생의 무상함, 자아의 분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탐구하며, 독자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고민하게끔 한다.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고 싶지만, 그 누군가도 결국 내가 아니다.”
“나는 너무 많이 느끼고, 너무 적게 존재한다.”
“삶은 나를 지나쳐 간다. 나는 단지 그것을 바라볼 뿐이다.”
리스본의 한 조용한 골목길, 카엣아누 팔마 거리 16번지에는 특별한 집 한 채가 있다. 바로 포르투갈의 위대한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생의 마지막 15년을 살았던 집이다. 지금은 <카사 페르난두 페소아 Casa Fernando Pessoa>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 공간은, 단순한 주거지를 넘어 하나의 문학적 성지로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이자,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문화적 명소이기도 하다.
이 집은 1945년 지어진 평범한 아파트 건물의 일부로, 외관만 보아서는 세계적인 문학가가 살았던 곳이라고 인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페소아의 존재가 집 안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 그의 서재로 꾸며진 방에는 직접 사용했던 안경, 타자기, 책들과 손으로 쓴 메모들이 전시되어 있고, 침실은 당시의 가구와 분위기를 최대한 복원하여 방문자들이 그의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전시물이자, 기억의 그릇이 된 셈이다.
이 집이 특별한 이유는, 거대한 박물관이 아니라 작고 조용한 거주지라는 데 있다. 이는 페소아의 삶 자체를 닮아 있다. 그는 화려한 문단 활동을 벌이기보다, 외로운 방 안에서 끝없이 사유하고 써내려갔던 고요한 작가였다. 리스본을 사랑했지만 사람들 사이보다는 골목과 거리, 커피 한 잔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했던 사람. 그런 그에게 이 작은 집은 완벽한 피난처이자 우주였다. 내가 페소아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이다. 조용히 방 안에 앉아 있으면, 어디선가 그의 문장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