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타치바나 쇼쿠도>
더블린에서 살던 시절, 유학원 대표님은 당부했다. “여기는 조심해야 해요.” 썸머힐, 스미스필드, 탈봇거리, 발리문… 나는 그 말을 꽤 성실하게 믿었다. 생활권과 무관한 지역이 많았던 덕에 몇 달 동안은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안전은 낯선 도시에서 가장 값싼 보험이니까. 그런데 우연히, 밤에 썸머힐 거리를 걷게 됐다. 지나고 나서야 그 길이 ‘위험지역’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는데, 이상하게도 생각만큼 무섭지 않았다. 정키들과 약쟁이로 보이는 몇 사람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들은 나에게 어떤 이야기도, 어떤 위협도 건네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다. 위험은 종종 사실이라기보다 말의 형태로 먼저 도착한다는 것을. 누군가의 경고가 도시의 풍경을 미리 규정해버릴 때, 우리는 그 풍경을 보기 전에 이미 ‘본 척’하게 된다는 것을.
그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위험지역 투어’를 시작했다. 물론 해가 드는 시간 위주로, 스스로 정한 작은 규칙을 지키면서. 조심해야 한다는 전제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누군가의 말만 듣고, 혹은 지도 위의 색깔만 보고, 그곳의 얼굴을 지레 짐작하는 일은 조금씩 지양했다. 안전을 택하는 것이 여행자의 미덕이라면, 때로 금기를 넘어서는 여정은 여행자의 질문이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나’ 하고 묻는 일. 그 질문이 내 발걸음을 조금 더 멀리 데려갔다.
오사카는 미식의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맛의 지도 바깥에는 늘 다른 지도를 찾았다. 내가 숙소로 예약한 덴가차야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해골’ 표시 같은 경고가 떠올랐다. 니시나리구 신이마미야 인근, 아이린과 가마가사키로 불리는 일대. ‘치안이 나쁘다’는 이미지, 노숙과 빈곤이 밀집된 풍경, 사회적 이슈가 빈번하다는 설명, 심야에 단독으로 골목을 걷지 말라는 당부… 심지어 니시나리구가 전체 형법범이 높게 집계된 곳이라는 말까지. 그래서 나는 그곳을 ‘밤의 공포’로만 소비하지 않기 위해, 역설적으로 이른 오후에 몰아서 걷기로 했다.
처음 목적지는 오전 9시에 문을 여는 이자카야 <나리야>였다. 9시부터 11시까지 나오는 ‘모닝 세트’가 있다기에, 나는 그 차림이 궁금했다. 맥주, 소주, 하이볼 같은 원하는 술 한 잔에 삶은 달걀, 매일 바뀌는 작은 디시로 구성된다는 그 세트였다. 하지만 가게는 닫혀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시장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와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기대가 문 앞에서 멈추는 경험은 여행에서 흔하지만, 그날의 닫힌 셔터는 이상하게 상징처럼 보였다. ‘원래 열려야 할 것’이 닫혀 있을 때, 우리는 결국 다른 길로 흐르게 된다. 나는 미련을 빨리 버리는 스타일이기에.
나는 얼른 단념하고 주변을 걸었다. 이곳의 어떤 이자카야에서는 다찌에 앉아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코인노래방처럼 한 곡당 백 엔쯤 내면 되는 방식이라는데, 오전인데도 문 밖을 뚫고 나오는 ‘괴성’이 심심치 않게 들렸다.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영역을 장악했다’는 말이 어쩐지 정확했는데, 그들은 공격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도시의 모서리에 오래 눌러앉은 시간처럼 보였다. 그 시간은 사람을 경계하게 만들기도 하고, 동시에 이상한 평온을 안기기도 한다. 어떤 곳은 위험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삶이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낯설었다.
그 주변의 식당으로 들어섰다. 신이마미야 역 근처의 <타치바나 쇼쿠도>. 새벽 다섯 시에 문을 연다는 동네 식당은, 문턱을 넘는 순간 ‘생활의 식당’이라는 말이 먼저 발끝에 닿았다. 먹고 싶은 걸 고르고, 빨리 먹고, 계산하고, 다시 길로 나가는 사람들. 이곳의 시간은 관광객을 기다리지 않는다.
카레는 이곳의 상징 같은 메뉴였다. 집에서 끓인 듯 되직하고 진하며, 맵기가 과하지 않은 타입이었다. 주문을 기다리며 병맥주를 시켰다. 저 먼발치 테이블에서 혼자 맥주를 드시는 아저씨가 보였고, 그 장면이 어떤 신호처럼 내 몸을 움직였다. ‘나도 한 병’—그건 따라 하기라기보다, 이 동네의 호흡을 잠시 빌려오는 일이었다. 손님들도 대체로 동네 단골 ‘아저씨’들처럼 일상에 익숙한 얼굴이 많았다. 그 사이에 나처럼 호기심으로 들어온 여행자가 섞여 있었다. 서로를 뚫어지게 보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는 공기. 위험하다고 이름 붙여진 곳에서야말로, 사람들은 더 조용하게 각자의 안전거리를 지키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