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편의점, 난바거리
오사카 숙소 근처에는 일본 편의점의 ‘삼대장’이 나란히 있었다. 패밀리마트, 로손, 세븐일레븐. 한국에서는 굳이 특정 브랜드의 편의점을 찾아가지 않는다. 편의점은 늘 거기 있고, 필요한 것은 대체로 비슷하며, 각 브랜드가 내세우는 간식이나 디저트의 ‘간판 메뉴’에도 큰 흥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본 여행의 이유 목록에는 종종 ‘편의점 투어’가 들어간다. 이번 오사카 여행에서 처음으로 ‘디저트 예습’을 했다. 미디어와 가이드북, 에세이와 블로그, 주변 지인의 추천을 한 장의 목록으로 압축해 ‘먹킷리스트’를 만들었다. 마치 도시의 맛을 미리 번역해 두면, 현지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처럼.
매일 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세 편의점을 들렀다. 하루의 끝에 편의점은 가장 작은 ‘항구’가 된다. 빛이 밝고, 문은 자동으로 열리고, 땀이 식는 동안도 손은 무언가를 고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첫날부터 목록은 난관에 부딪혔다. 당연히 가면 있을 줄 알았던 것들이 진열대 어디에도 없었다. 인기 품목이라 매진되는 속도가 빨라서인지, 애초에 그 지점에서는 취급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직원에게 일일이 묻는 것도 괜히 실례 같아, 나는 매의 눈을 장착한 채 선반 사이를 순찰했다. 그런데도 겨우 한두 개만 건질 뿐이었다. 원래 이런 건가. 여행 3일째부터는 리스트고 뭐고, 결국 내 직관에 도시의 선택권을 넘겼다. 딸기요거트의 새콤함, 계란샌드위치의 단정함, 유부가 널찍하게 포개진 우동의 무심한 푸근함, 로손의 카페라떼가 남기는 적당한 달달함, 패밀리마트 오뎅의 따뜻한 국물, 그리고 패밀리마트 치킨 커틀릿(파미치키)의 담백한 기름기. 내 기준으로 ‘생존’ 판정을 받은 것들이었다.
시간을 오래 붙잡아 두는 카페가 궁금했다. 오사카 본마치 인근 거리에서 펄럭이는 하얀 노렌에 적힌 ‘SINCE 1921’. <히라오카 코히텐>은 그 표지 아래에서, 한 세기를 넘게 전통 ‘킷사텐(다방)’의 결을 지켜 왔다. 자체 로스팅 커피와 수제 도넛을 내세우며, 유행을 좇기보다 오래된 방식의 손맛을 고집하는 태도 자체가 이곳의 향기였다. 요즘 카페에서 흔치 않은 보일링(boiling) 방식 추출로 묵직한 향과 농도를 차분히 세운 커피는, 곁에 놓인 도넛의 담백한 단맛과 만나 ‘화려함’ 대신 ‘정확한 위로’를 남겼다. 레트로한 실내는 바깥의 분주함을 한 겹 걸러, 잠깐 멈춰도 되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난바의 거리로 나왔다. 난바는 디저트로도 붐빈다. 관광객들이 달콤함 앞에서 길게 늘어서는 풍경은 마치 도시가 한때의 피로를 설탕으로 달래는 의식처럼 보인다. 내가 먼저 찾아가 웨이팅을 선 곳은 <파블로>였다. ‘갓 구운 치즈 타르트 전문점’이라는 간판 그대로, 치즈케이크를 타르트라는 손바닥 크기의 형태로 바꿔 도시의 리듬에 맞춘 브랜드였다. 파블로는 2011년 오사카에서 문을 열었고, ‘굽기 정도를 선택한다’는 아이디어로 치즈 타르트의 재미를 확장해 왔다. 줄은 생각보다 금방 줄었다. 사람들의 선택이 많은 우지 말차를 하나 골랐다. 가격은 착하지 않았지만, 그 맛은 달콤함을 과시하기보다 씁쓸함과 크리미함의 균형으로 ‘성숙한 디저트’의 방향을 보여 주는 듯했다. 어쩌면 말차는 일본이 단맛을 다루는 방식의 은유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내가 공략한 것은 외국인들이 특히 줄 서서 기다리던 디저트, ‘말차 아이스 멜론 빵’이었다. 그것을 처음 손에 쥐는 순간, 디저트라기보다 작은 날씨를 들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겉은 멜론 빵 특유의 격자 무늬 쿠키 크러스트가 뽀송뽀송하게 부서지고, 안쪽의 빵결은 따뜻한 숨을 품은 채 폭신하게 눌리다가, 그 사이에 끼워 넣은 말차 아이스가 차갑고 진하게 녹아든다.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함이 먼저 눈처럼 흩어지고, 곧이어 말차의 씁쓸한 향이 혀끝에 내려앉아 달콤함을 깔끔하게 다듬었다. 이 빵은 ‘뜨거움’과 ‘차가움’, ‘부서짐’과 ‘녹음’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작은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