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 <꺼먹돼지><인덕원 비빔국수>
‘술부심’이라는 말에는 묘한 촉감이 있다. 겨울 코트 안주머니에 오래 넣어둔 라이터처럼, 이제는 쓸 일도 없는데 손끝에 습관만 남아 있는 물건같은. 나는 이제 술을 잘 마시는 걸 자랑하지 않는다. 적어도 머리로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태’는 남아 있다. 도전하는 상대가 있다면—그 도전이 얼마나 유치하든—어딘가에서 내 안의 원시적인 본능이 고개를 든다. “응징” 같은 단어가 마음속에 뜨면, 그때부터 논리는 늘 감정의 뒤편으로 밀려난다.
몇 달 전, 그 본능이 양천구 신정동에서 깨어났다. 친구 준철이의 홈그라운드였다. 나는 1대1 승부에 대적하러 원정을 갔다. 그런데 준철이는 주변인들을 끌고 왔다. 다행히 그들 또한 내 지인이어서 우리는 함께 재미있게 술을 마셨다. 문제는 술이 아니라, 술을 둘러싼 말들이었다. “주량이 어떻게 돼?” “괜찮아?” “이 정도는 거뜬하지?”
사람은 말로 눌리면, 몸으로 증명하려 든다. 나는 그날, 마시는 족족 내 주량을 확인하려는 발언들에 즉각 행동으로 답했다. 오버페이스인 줄 알면서도, 그날의 술자리를 하나의 ‘퍼포먼스’로 착각했다. 공연은 끝나야 하고, 무대 위의 나는 내려오지 못했다. 그리고 귀가 길. 택시에 토사물이 분출되었다. 대학교 때 이후 25년 만의 참변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음이 상했다기보다는—그 말이 더 정확하다—자존심에 금이 갔다.
그 이후로 준철이는 단톡방에서, 잊을 만하면 내 주량을 조롱했다. 말로. 짤로. 웃음으로. 나는 늘 나이스하게 대처했다. “그래, 그날은 내가 졌지.” 그런데 인간은 참 이상하다. 웃으며 넘기면 넘길수록 마음 어딘가에 작은 빚이 쌓인다. 갚지 않으면 이자가 붙는 빚. 언젠가는—정말 언젠가는—‘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무리 짓고 싶었다.
마침 올해 말, 동탄에서 리벤지 라운드가 열렸다. <인덕원 비빔국수> 동탄점을 운영하며 동탄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동탄의 손종원’ 심준보, 그리고 그와 함께 동업하는 우성이를 위한 연말 모임. 준보네 아파트를 숙소로 잡고 1박 2일 일정이 시작되었다. 연말이다보니 이미 5일 연속 이어진 술자리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누가 들어도 한심한—컨디션 조절을 했다. 모임 전에 한강 고수부지 5km를 달렸다. 내가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어딘가에서는 스스로가 우습지 않았다. 나는 한국시리즈 5차전을 준비하는 선발투수 심정으로 하루를 준비했고, 그 마음 그대로 동탄에 도착했다.
1차 고깃집부터 나는 준철이를 내 앞자리에 앉혔다. 자리 배치는 전술이다. 감정의 전장을 ‘테이블’로 축소하면, 인간은 더 진지해진다. 우리는 서로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잔 상태를 점검했다. 마치 서로의 체력 게이지를 확인하는 듯한, 은근한 안위 체크로 말이다. 준철이가 내게 “괜찮냐?”고 마음에도 없는 배려를 할 때마다, 나는 덤비지 않았다. 성급한 공격은 늘 내 편을 불리하게 만든다는 걸—나는 그때 배웠다. 내 스타일대로, 모든 친구들과의 대화에 고르게 참여했다. 준철이가 긴장을 늦출 때를 찾아내 그때마다 건배를 유도했다.
2차까지 밖에서 마치고, 3차는 준보네 아파트로 옮겼다. 이미 준철이는 양쪽에 부축 없이는 이동이 힘들 정도로 체력이 고갈되었다. 그런데도 입은 살아 있었다. “나 아직 죽지 않았다”는, 설득력 없는 주정이 계속 흘러나왔다.
아파트는 술의 속도를 바꾸는 공간이다. 가게가 가진 ‘시간의 방벽’이 사라지면 술은 갑자기 졸음의 언어로 변한다. 게다가 나는 유난히 방이나 숙소에서 마시면 금방 지치고 잠이 온다. 이미 다 이긴 경기에서 자살골 넣고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서 있었다. 스탠딩으로 술자리를 버텼다. 몸을 세운다는 건, 의지를 세우는 일과 닮아 있다.
준보가 주도하는 와인 파티가 시작됐다. 잔이 소주에서 와인으로 바뀌는 순간, 승부의 형식도 바뀐다. 소주가 직선이라면 와인은 곡선이다. 소주는 밀어붙이고, 와인은 빙빙 돌린다. 나는 그 곡선 속에서 잠의 유혹을 가장 경계했다. 그리고 마침내, 준철이의 입에서 포기의 의사가 흘러나왔다. 그건 커다란 선언이 아니라 작은 숨처럼 나왔다. “영면, 나 영면하고 간다.”
나는 그 장면을 영상으로 담았다. 증거라기보다는, 기록. 역사가 늘 그렇듯, 승리의 순간은 오래 남지 않으니까. 이상하게도 ‘승장’의 입장에 서니 스스로가 대견했다. 한낱 쓸데없는 술대결일 뿐인데, 인간은 그 쓸데없음 속에서 자아를 주워 담는다. 우리는 원래 그렇게, 사소한 일로 체면을 세우고, 사소한 일로 무너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