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 <KBO스토어><천린>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대학원 선후배 다섯 명이 모여 있는 단톡방이 있다. 나와 같은 시기에 연구실 불을 끄고 켜던 교우도 있고, 내가 입학하던 해에 이미 졸업장을 쥐었던 선배도 있는데, 우리를 묶어둔 끈은 전공도 있었지만, 다섯 명 모두 오랜 세월 응원해온 야구 팀이 있었다. 전부 다른 팀(기아, 두산, 롯데, 엘지, 한화—가나다 순)이고, 지역 배분도 묘하게 잘 되어 있다. 시즌에는 경기장도 함께 갔지만, 대부분은 단톡방에서 경기 결과와 기사 링크 및 카더라통신을 돌려보며 피드백을 나눈다. 강성팬이라기보단 유년의 습관이 어른의 일상에 조용히 뿌리내린 팬심, 가끔은 잊은 척해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마음이다.
2024년에 기아 타이거스가 우승한 뒤 기아 팬인 창희가 야구 결산 모임에 한 턱 냈고, 그때부터 ‘우승한 팀의 팬이 1차를 쏜다’는, 우리의 소박한 의식이 생겼다. 그 다음 해, 작년에 우승한 엘지 팬 연곤이 형이 1차를 내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장소는 창희 사무실 근처의 중식 노포였다. 오랜만에 ‘술을 마시러’ 강남으로 가는 길은 이상하게도 작은 여행처럼 느껴졌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데도 어딘가 들렀다 가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겼다.
당일 저녁, 모임 콘셉트에 맞게 신사역 가까운 <KBO 스토어>에 먼저 들렀다. 시즌이 이미 끝나서인지 매장은 물품이 꽉 들어차기 보다는 올해의 마지막 재고를 조용히 정리하는 기색이 더 짙었다. 오피스디포에서 운영해서 그런지 어딘가 전형화된 문구점의 무드에서 ‘열광’은 조금 다듬어진 표정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팀별로 굿즈를 모아놓은 편집숍이다 보니 구성은 제각각이었고, 롯데 굿즈가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그 팀의 운명처럼 느껴져 잠깐 웃음이 났다. 나는 매장을 한 바퀴 돌고 마음을 정했다. 약 1만 원 선에서, 오늘 모이는 구성원의 응원 팀 굿즈를 하나씩 고르자고.
그렇게 ‘야구의 상징’을 쇼핑백에 넣고, 창희 사무실에 들렀다가 중국 음식점으로 향했다. 논현동 골목의 결을 따라 2층에 숨어 있듯 자리한 중국집 <천린>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엔 빨간 글씨가 먼저 눈을 세게 붙잡았고, 문을 열자마자 의외로 깔끔한 실내가 술자리의 첫 마음을 단정하게 가라앉혔다. 주인 아주머니는 길게 묻지 않고 필요한 말만 툭툭 건네는 사람처럼 보였다. 친절을 과장하지 않는 표정, 그러나 손님을 흩뜨리지 않는 리듬, 그 태도는 오래된 가게가 가진 단단함에 가까웠다. 창희가 늘 그렇듯 먹는 메뉴를 몇 개 풀어놓자 주문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잠시 뒤 탁자 위로 음식이 차례차례 내려앉는 속도는 과장 없이 정확했고, 우리는 그 전에 창희 사무실에서 가져온 위스키를 꺼냈다. 잔을 돌리며 2025년 프로야구를 우리 스스로 결산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술자리엔 늘 우리들만의 스탠스 구도가 있다. 일단 두산 팬인 나는 엘지 팬인 연곤이 형에게 필연적 적대관계를 담은 말을 던진다. 그게 우리의 인사법이다. 문제는 내가 엘지에 대한 ‘악성’ 농담을 던져도 연곤이 형은 늘 자조적인 입장으로 받아친다는 것이다. “우리 원래 그래”라는 식의 태연함 앞에서, 나는 늘 내가 지는 기분이 든다. 더 미묘한 건 주변의 엘지 팬들 대부분이 자기 팀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그 겸손이 때로는 도발처럼 느껴진다.
한편 기아 팬인 창희와 롯데 팬 영은이는, 본인들은 아니라고 잡아떼지만, 해묵은 영호남의 갈등 구도를 야구판으로 슬쩍 끌고 들여온다. 야구는 원래 지역의 언어로 말해지는 스포츠라서, 그들의 농담엔 오래된 지도가 희미하게 번져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열기 위에서 한화 팬 찬희 형은 늘 충청도식 화법으로 야구를 평한다. 급하지 않게, 그러나 빗겨나가지 않게. 결국 이야기는 늘 같은 곳으로 흐른다. “롯데는 해체해야 한다”는 프레임이 등장하고, 롯데팬은 그 말에 상처받은 척하고, 누군가는 그 말에 조롱을 더한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의 팀을 놀리면서도 서로의 인생을 놀리지는 않는다는 규칙을 알고 있다. 그 선을 지키는 한, 야구는 다섯 명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 건조해질 때마다 작은 습기를 건네준다. 우승한 사람이 1차를 쏘는 문화는 ‘승리의 자랑’이 아니라 ‘함께 늙어가며 응원하는 방식’에 더 가깝다고. 한 시즌을 버텨낸 마음들이 모여 골목의 2층에서 조용히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다짐했다. 2026년에는 내가 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