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장태산 | 각자의 프레임을 공유하는 사람들

대전 <장태산 휴양림>






코리아둘레길(이하 ‘코둘’) 모임은 셔터 트래픽이 가장 많은 모임 중 하나다. 우리는 걷기 위해 모였지만, 걷는 일만큼이나 기록하는 일에도 진심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순간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차려진 요리를 ‘인증’하는 시간이 꽤 길어져도, 그 누구도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다. 지금은 자연스럽지만 모임 초창기에는 40대 이상 멤버들에게 낯선 풍경이기도 했다. 그런데 햇수로 5년 차가 되어가니, 그 낯섦은 어느새 익숙한 의식이 되었다. 2022년 남파랑길을 걸었던 첫날, 어린 친구들에게 부메랑 숏을 배웠다며 좋아하던 선준 누나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우리가 모이거나 여행을 가는 날이면 단톡방은 쉬질 않는다. 각자 스타일대로 사진을 찍고 공유하느라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다른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보며 정리하느라 시간이 빠르게 사라진다. 기록을 탐닉하는 나에게 이 기록물들은 특히 소중하다. 나는 평소 피사체로 남는 사진이 많지 않은 편인데, 이 모임만 다녀오면 내 모습이 꽤 많이 수집된다. 그 안에는 내가 미처 모르던 표정과 자세, 타인 앞에서의 태도가 들어 있다. 누군가의 프레임 속에 들어간 나는 때로 낯설고, 그래서 더 정확하다. 사진은 ‘그날의 풍경’만 남기는 게 아니라 ‘그날의 나’를 남긴다는 사실을, 나는 이 모임에서 자주 확인한다.


코둘은 매년 멤버들이 돌아가며 호스트가 정해지고 여행지를 선정한다. 이번 가을의 호스트는 진철이었고, 그는 대전 장태산을 설계했다. 장태산 수목원은 특히 가을이 장관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날의 장태산은 색과 질감이 또렷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숲길에는 낙엽이 얇게 깔려 발끝에서 바삭한 소리가 났고, 햇빛이 가지 사이로 들어오면 잎의 가장자리만 반짝였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인 결이 선명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잎들이 흔들리며 밝고 어두운 면을 번갈아 드러냈다.


장태산에서 사람들이 유독 배경에 넣고 싶어 하는 다리가 있다. 그 다리 앞에 서면 시야가 트이면서, 난간의 선과 다리로 이어지는 길이 사진 구도를 깔끔하게 잡아준다. 프레임 안에서 선이 만들어주는 안정감이 있고, 그 뒤로 단풍이 층층이 걸리며 깊이가 생겼다.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그 앞에서 멈춰 섰다. 번갈아 같은 자리에 서서 서로를 찍어줬다. ‘사진사 모드’가 된 사람들의 오더는 제각각이었지만 대부분은 그 말을 잘 따라준다.


멤버 중 ‘남자 주연이’ 이야기 좀 해보자. 둘레길 행사 때는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았는데, 일정 중 발에 상처가 나 절름거리며 걷는 모습 때문에 오히려 그의 존재가 좀 더 도드라졌다. 행사 이후 생각보다 모임 참여도도 높았고, 나와는 유일하게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멤버라 더 각별해졌다. 여행이 거듭될수록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남자 주연이는 의외로 본인을 표현하고, 사진에 담기길 바라는 타입이었다. 마음에 드는 배경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사진 찍기 좋은 배경이 나와도 먼저 나서지 않는다. 본인이 생각하는 구도가 있어도, 혹은 전혀 감이 오질 않아도 먼저 몸을 들이대지 않는다. 누군가가 먼저 서서 한두 번 ‘검증된’ 포즈를 보여주고, 주변의 추임새가 따라붙고, 그 장면이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그때 슬며시 배경 앞에 서 있다.


그 모습이 전혀 뻔뻔해 보이지도, 얄미워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우리들의 웃음 포인트다. 이제는 대놓고 “나 찍어줘”라고 말하는데, 내 사진첩 안에도 남자 주연이의 사진이 꽤 많아졌다. 누군가를 찍어주는 일은 결국 그 사람을 한 번 더 바라보는 일이기도 해서, 그가 프레임 안에서 조금씩 편해지는 과정을 보는 게 좋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동시에 서로의 긴장을 풀어준다. 찍고 찍히는 일이 많은 모임일수록, 어떤 마음은 더 빨리 드러난다.


이 모임에는 피사체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기에, 다양한 실험적인 구도를 시도할 수 있다. 내가 미리 구상해온 구도도 있고, 당시 배경과 인물의 상태를 보고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구도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연출하지 않은 스냅숏을 좋아하지만, 코둘에서는 연출인 듯 아닌 듯한 사진을 내 마음대로 찍어댈 수 있다. 우리끼리의 촬영 윤리는 관대한 편이다. 덕분에 실패도 작품이 되고, 어색함도 장면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관대함이 서로를 보호한다는 사실이다. 누가 더 잘 나오느냐보다,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증거가 남는 게 더 중요하다는 합의가 이 모임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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