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 <주인>
‘나의 주관’이라는 게 있다. 처음부터 단단히 정해놓은 원칙이라기보다, 살다 보니 내 몸에 맞춰 늘어나고 줄어들며 자연스레 길들여진 기준이다. 어떤 날은 실패와 후회의 자국이 남아 있고, 어떤 날은 의외의 성취가 덧칠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잘 맞는 잣대가 생길 때마다 그것을 ‘나의 규범’이라는 텍스트 속에 한 줄씩 수록한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생활의 ‘주석’ 같은 것들이다.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는 대체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시절이었다. 말투를 다듬고, 태도를 조정하고, 가치관마저도 상황에 맞게 다림질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옷장에 걸린 옷들 중 ‘무난한 셔츠’를 골라 입듯, 부딪히지 않는 표정을 선택하고, 튀지 않는 문장을 고르는 데 능숙해졌다.
그러다 불혹이 되고 나서야, 한때는 버리려 했고 한때는 짱박아 두었던 옷들을 다시 꺼내 입게 되었다. 놀랍게도 여전히 잘 맞았다. ‘그래, 이건 내 옷이지.’ 그렇게 나는 조금 더 편안하게 나를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몇 년이 더 지나자,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안정과 편안함만이 ‘멋있게 나이 듦’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기둥일까. 늘 변화하자는 말처럼 성급한 다짐이 아니라, 느닷없이. 예고 없이 나다움을 확장하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한국전통주 모임이나 행사 참여에 점점 등한시했다. 예전보다 시장의 파이가 커졌다고는 해도, 이 씬은 여전히 좁았다. 좁은 곳에서는 말이 발을 가진다. 하지도 않은 생각과 행동이 어느새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사실’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를, 직접 겪거나 간접으로 체험하는 일이 잦았다.
더 큰 이유도 있었다. 나는 집단 속에서 유난히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대화가 흐르는 속도와 방향이 내 호흡과 어긋날 때가 많고, 의도치 않게 어떤 답변이나 성향을 보여줘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분위기를 저해하고 싶지 않아 ‘선행동, 후후회’를 반복해왔다. 그 자기반성이 누적되면서, 차라리 내 할 일만 하며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렇다고 인간관계에 담을 쌓았던 것은 아니다. 잘 못해도 들어오는 배려에는 대체로 응했다. 그게 도리라고 믿었다. 배려는 빚이 아니라, 세계가 나에게 아직 기대를 걸고 있다는 표시처럼 느껴졌으니까.
2025년 연말, 온라인으로만 소통해오던 해인 님이 천안의 주점 ‘주인’에서 열리는 행사 참여를 제안했다. 나는 늘 그렇듯 정중히 거절할 멘트를 미리 세워두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돌발적으로 한 문장이 치고 올라왔다.
‘그래, 이 시점에서 한 번 일탈(?)을 해볼까?’
행사는 ‘주인’ 대표님이 매년 연 초에 양조장 대표들을 모셔 안부를 묻고, 서로의 친분을 쌓고, 가능하다면 협업의 실마리까지 만들자는 취지로 진행해온 자리였다. 나는 누가 오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게 손을 내민 성의가 고마워서, 그 성의만 보고 참여 의사를 댓글로 남겼다.
하지만 약속된 날 오전이 되자 후회감이 잔잔하게 밀려왔다. 참석하는 양조장 대표님들 명단을 보니, 친한 분은 소수였고 대부분은 초면이거나 행사장에서 인사 정도 했던 사이였다. 마침 주점 대표님의 확인 문자도 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차라리 취소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잠깐 스쳤다. 그래도 노쇼는 할 수 없었다. 초대한 해인 님께 확인 메시지를 보냈고, 행사는 당연히 진행된다는 답과 함께 나의 자초지경을 다독이는 말들을 받았다. 그래, 가자. 이미 ‘쿨하게’ 간다고 의사를 남겼으니, 그 문장에 걸맞게 몸을 옮기자. 막상 가면 ‘잘 왔다’라고 안심할지도 모르니까. 마음이 발보다 늦게 따라오는 날도, 인생에는 필요한 법이다.
천안아산역에 도착했다. 처음 내려보는 곳. 기차역은 마치 공항처럼 웅장했다. 낯선 도시의 첫인상은 언제나 내게 작은 기세를 준다. 해인 님, 그리고 우리예술을 맡아 운영하는 재민 님과 함께 택시를 타고 주점으로 향했다. 누가 봐도 내가 큰 어른이지만, 나는 더듬더듬 자기소개를 했다. 의사소통에 용이한 콘텐츠들이 떠오를 때마다 작은 용기를 내어 문장을 건넸다.
약속 시간에 도착해 이미 와 있는 대표님들과 명함을 교환하며 ‘신고식’을 마쳤다. 각자가 가져온 술을 차례로 마시면서 직관적인 품평회가 시작됐다. 현재 미디어에서 유행하는 소스, 한국전통주 씬에서 회자되는 이슈, 양조의 현실과 유통의 벽, 브랜드가 아니라 ‘살아남는 방식’에 대한 고민까지—대화는 ‘무한 싸이퍼’처럼 이어졌다.
나는 처음에는 비어진 자리에 꽤 오래 앉아 시간을 향유했다. 누군가와의 간격을 확보한 채로도 모임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작은 안도였다. 그러다 내가 함께 온 사람들이 있는 자리로 ‘초대’되었고, 그때부터 모임이 끝날 때까지 나는 그곳에 뿌리내렸다.
결론적으로 역시나 잘 온 모임이었다. 거의 마지막 기차를 잡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프레시한 시간을 견디는 것. 그 낯섦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