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덕 <해운사><참조은갈비><바다술상>
원래 이번 제주여행 멤버는 나 포함 네 명이었다. 나는 이틀 먼저 도착해 제주살이를 시작한 안도부부의 집에 먼저 칩거하였다. 여행 3일차, 안도부부와 혜진이가 비슷한 시간대에 제주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도착 하루 전부터 단체 채팅방은 한 가지 부탁을 쉴 새 없이 울렸다. “바다술상 현장 웨이팅, 꼭 부탁해.” 귀덕 숙소 인근에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이모카세의 제주 업장이 문을 열었고, 그 집은 점심에 직접 가서 저녁 예약을 잡아야 했다.
그날 오전 내내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깥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악천후가 내게 알맞은 명분을 주었다. ‘그래, 오늘은 이 일 하나만 하자.’ 타이머까지 맞춰두고 시간을 기다렸다. 바람이 창을 두드리는 동안, 나는 ‘여행의 책임’ 같은 것을 생각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는 움직이고, 누군가는 기다린다. 그 분담이 공평한가를 따지는 순간부터 마음은 슬쩍 기울기 시작한다.
저녁 예약을 위해 숙소를 나섰다. 도보로 7분 거리였지만, 강력한 바닷바람에 눈물이 얼굴을 수평으로 타고 귀까지 번졌다. 바람이 사람의 표정을 밀어버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속에서 다른 목소리가 올라왔다. 내가 이용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몸을 희생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추운 날씨가 마음까지 편향시키지 않도록 ‘중용’이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그건 어쩌면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오래된 연습일지 모른다.
식당에 도착해 예약을 마치고 나왔다. 그리고 나는 다른 길로 돌아갔다. 여행자로서 나만의 작은 약속이다. 같은 길로 되돌아가면 풍경도 생각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 들어서, 일부러 다른 길을 택한다. 새로운 발견은 대개 그렇게 ‘조금 다른 귀가’에서 생긴다. 그날의 발견은 ‘사찰’이였다. 제주 바닷길 곁에 앉은 절, 해운사. 이름 그대로 바다의 숨과 구름의 결이 서로 스미는 곳이다. 전국 유일하게 바다가 바로 보이는 절이라고 했다. 큰 사찰은 아니었지만, 추위에 떠는 중생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만드는 온기가 있었다. 마루 끝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니 파도 소리 위로 ‘전해짐’과 ‘응답’이 겹쳐 들리는 듯했다. 바다는 멀리 알리고, 절은 안으로 되돌려 듣는 곳. 밖으로 흩어지는 신호를, 안쪽의 고요로 받아 적는 자리. 바람은 여전히 매서웠지만, 그 매서움마저도 수행의 한 구절처럼 단정해졌다.
숙소로 돌아와 얼었던 몸을 녹이며 잠깐 눈을 붙였다. 깨어나니 다른 크루들이 도착해 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널부러진 채 시간을 보냈다. 그때 누군가 배고프다며, 오마카세 전에 0차를 하고 가자는 의견을 냈다. 추운 날씨 탓에 주변을 찾아봤지만 귀덕 근처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그러다 내가 돌아오며 봤던 ‘새로 오픈한 고깃집’ 이야기를 던졌더니, 안도누나는 몇 달 전부터 ‘곧 열린다’는 말만 듣던 곳이라며 바로 채비를 독려했다.
칠흑 같은 어둠 아래, 멀리서부터 고기 굽는 향이 먼저 길을 안내했다. 노란 간판이 홀로 그 일대를 밝혔고, 여기서 장사하는 게 패착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외딴 곳이었다. 안에는 주민으로 보이는 테이블 하나와 우리 테이블 하나, 두 개의 불판이 조용히 타올랐다. 주인장 부부 중 아내는 주방을, 남편은 홀을 맡았다. 남편의 움직임은 서툴렀지만 성실했고, 서빙이 끝날 때마다 주방으로 불려가 식재료를 손질하는 손끝에는 어색한 긴장과 정겨운 책임감이 함께 묻어났다. 마치 공무원 정년을 마치고 제2의 인생을 이 고깃집에 건 사람처럼—조심스럽고, 또 진지했다. 우리는 3명이서 3인분을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시골 인심인가, 유통 라인 없이 떼오시나” 농담처럼 추측하다가, 결국 1인분을 더 주셨다는 결론에 닿았다. 사장님은 당황하면서도 쿨하게 “더 드세요”라고 했다. 맛도 반찬도 만족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나오는 길에는 그 집의 미래를 살짝 걱정하는 마음이 남았다. 좋은 마음만으로 버티기엔 세상이 너무 차갑지 않을까 하는, 여행자 특유의 쓸데없는 다정함 같은 것.
그리고 마침내 예약해둔 곳으로 향했다. 귀덕의 바다술상. 합리적인 가격에 해산물 오마카세를 낸다고 알려진 곳답게, 주문한 한 상은 가격 대비 훌륭한 안주로 차려졌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분위기다. 제주 바다를 창으로 두고 받는 정갈한 한 상—그 한 줄이 과장이 아니었다. 접시는 요란하기보다 제철 해산물과 한식 한상차림의 밀도로 승부했다. 창밖의 어둠 속에서 파도는 계속 움직였고, 우리는 그 움직임을 천천히 씹어 삼키는 사람들처럼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