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 <강촌원조쭈꾸미><구구치킨을지로골뱅이>
진희 누나와 만나면, 가끔 약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날 나는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했고, 누나도 뒤이어 만났다. 약속시간 30분 전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 올 때까지 카페에서 기다릴까?” 같은 문장을 꺼낼 텐데, 누나는 그런 문장을 평생 배운 적이 없는 사람처럼 군다. 기다림을 ‘대기’로 두지 않는다. 이번 밤도 그렇게, 시작이 먼저 도착했다.
10년 전 일이다. 자양동 <계탄집> 앞에서 웨이팅이 걸렸다. “조금만 기다리면 돼요”라고 말하던 직원 분의 목소리를 누나는 가볍게 무시하듯, 뒷골목으로 나를 끌고 갔다. 뒷골목 시장의 백반집. 누나는 말했다. “여기서 먼저 한 잔 하자. 순서 오면 그때 나가면 되잖아.” 전화 한 통이 우리를 데리러 오면, 우리는 이미 술기운으로 마음이 풀어진 채로 원래 목적지로 이동했다. 그때는 꽤 충격이었다. 목적지 앞에서 시간을 견디는 대신, 목적지 이전에 식도를 먼저 데우는 방식이라니. 이제는 많이 적응했다. 어쩌면 나는 ‘기다림’을 배웠고, 누나는 그 기다림을 늘 다른 형태로 바꾸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날 양재에서도, 누나는 나를 ‘0차’로 이끌었다. 양재역 8번 출구 근처, 골목의 결이 갑자기 오래된 소란으로 바뀌는 지점에서 멈춰 섰다. <강촌원조쭈꾸미>. 90년대에 문을 열었다는 말이, 누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마치 연도 자체가 메뉴판의 한 항목인 것처럼. 누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의 인연을 풀기 시작했다. 근처 학원가에서 공부하다가 유난히 배가 고프면 여기서 밥을 먹으러 왔다는 이야기. 어느 날 다시 찾아갔더니 가게가 2층까지 쓰며 더 커져 있었고, 손님은 더 많아졌고, 골목은 더 분주해졌다는 이야기. 그러면서도 “예전 허름했을 때가 더 정감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을 조용히 얹었다. 그 말 속에는, 맛보다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의 습관이 들어 있었다. 끝으로 “승규와 다혜도 여기서 먹고 자랐지”라는 말이 따라붙자, 이 식당은 단순한 단골집이 아니라 누나의 시간에 박힌 못처럼 느껴졌다. 내향인이라도 자기 동네의 맛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면 할 말이 많아지는 법이다. 누나는 그 법칙을 누구보다 성실히 따르는 사람이었다.
주문은 누나에게 맡겼다. 나는 다른 파티원들에게 위치를 보냈다. 누나는 ‘산쭈꾸미’를 달라고 했고, 직원은 ‘생물쭈꾸미’만 가능하다고 했다. 철판이 나왔다. 쭈꾸미가 담긴 채로, 아직은 차갑고 무거운 텍스처가. 불을 올리자 철판은 조금씩 살아났다. 양념이 열에 눅진하게 풀리며 색이 짙어지고, 고추장과 고춧가루의 매운 향이 공기를 휘감았다. 나는 데워지는 과정을 프레임에 담으려 휴대폰을 들었다가, 순간 당황했다. 생전 음식 사진을 찍지 않던 누나가 영상을 찍고 있었다. “나도 이제 SNS 좀 해보려고.” 2026년 새해 계획이라도 되는지, 어색하지만 진지하게 기록을 남기는 표정이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 누나 인스타 반드시 확인한다.”
느닷없이 시작된 0차에 의준이와 영은이가 합류했고, 이왕 온 김에 볶음밥까지 클리어했다.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원래 가려던 곳, 양재 <구구치킨을지로골뱅이>에 들어갔다. 영은이가 입이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했던 이유가 문을 여는 순간 증명됐다. 화려함 대신 오래된 호프집 특유의 느슨한 온도. 그리고 곧 등장한 골뱅이—큼직한 살점에 대파와 다진 마늘, 고춧가루가 아낌없이 섞여 ‘깔끔하고 개운하게’ 감기는 양념—그 옆에 놓인 조금은 알싸한 고추치킨은 겉이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이 조합이 왜 단골을 부르는지 설명이 필요 없었다. 주변 테이블의 손님들은 대부분 동네 사람들 같았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과거로 흘러갔다. 우리도 그 흐름에 섞였다. 어떤 기억은 파면 팔수록 끝이 나지 않는다. 무슨 연유인지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지만, 대뜸 누나가 자신의 리즈 시절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술기운이 아니라 시간이 사람을 용감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잠깐 웃었고, 괘 오래 감탄하며, 잠깐은 말이 멈췄다. ‘한국전통주 씬의 김태희’는 다르긴 다르다는 농담이 테이블 위를 가볍게 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