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대학교에 복학한 첫해에 받은 성적표에 유일하게 A+를 받은 과목이 있었다. '미술의 이해'. 과목명이 정확한지 모르지만, 상당히 낡은 네이밍이어서 사실 기대가 없었다. 특히 월요일 아침 수업이어서 매주 출근하는 기분으로 수업에 임했다. 아니 임하려고 했다. 그 수동적인 결심은 능동적 학습 태도로 바뀌었는데, 강사님 영향이 컸다. 현직 큐레이터분이신데, 수업의 적극성을 이끌만한 외모였다. 원래 선생님을 좋아하면 그 과목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예비역의 마음가짐에 심쿵하는 마음을 더해 매주 제일 앞자리에 앉아 학습열을 지폈다. 수업 전 프로젝트 기기 챙기는 역할도 도맡았다. 처음에는 강사님 때문에 미술 수업에 시동을 걸었다면, 나중에는 미술 작품을 해석하는 재미에 빠져 교양수업을 전공수업처럼 공부했다. 작품 속에 숨은 뜻을 알고 보니 그림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때부터 난 미술관 가는 남자가 되었다.
더블린 생활을 하면서, 초반에는 도시 적응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면, 이후에는 문화생활에 초점을 맞췄다. 크고 작은 미술관이 많은데 몰라서 못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미술관 중의 최고 선임자격인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Ireland. 그래프턴 거리에서 메리언 스퀘어 공원 방향으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미술관이 보인다. 평창동의 저택 마냥 지어진 이 미술관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우아하다. 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비용은 0원. 입장료, 오디오 지원, 사물함 비용 모두 무료다. 매달인가 분기마다 다른 주제로 작품 전시를 하는데, 꽤 볼만하다. 규모가 크진 않다. 무명의 작가부터 피카소 등의 유명 작가의 작품까지 전시 스펙트럼도 넓다.
1달에 한 번은 꼭 이곳에 들러서 교양을 쌓았다. 더블린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도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추천한다. 담백한 미술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