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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조은 Aug 02. 2019

투자사의 홍보담당자로 지내는 것

그 동안 브런치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차마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미발행 글들이 수두룩하게 쌓여있다. 아래 문장은 정확히 1년 전 오늘 썼던 미발행 글 중 한 문장이다.


푼수 같지만 가끔 아니 매번, (꼭 투자사여서가 아니라) 훌륭한 철학과 동료가 있는 회사의 홍보를 담당하면서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동료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오글토글... 


8월 1일은 지금 다니는 회사 입사일이다. 나에게만 의미가 큰 것이지 뭔 유난인가 싶어 작년 입사 1년이 되던 날 쓴 글은 일기로만 남아있다. ('생각보다 판교는 다녀보니 가깝다' 이런 것도 써있다ㅋ) 1주년, 2주년 기념 때문이 아니라, 형식적인 숫자들을 카운트하는 이 핑계로 해마다 변화하는 내 모습을 저 멀리까지 돌아보고 다시 현실로 오곤 한다.


어느 회사에 있건 여행을 가건 나름 발에 부리나케 걷고 뛰어다니는 편이다. 얼마 전 우리 회사의 히스토리 사진을 외부에 전달할 일이 있어서 휴대폰 사진첩을 뒤졌는데, 어느덧 이 곳에서도 '추억'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참 다양한 일들이 많았음에 놀랐다. '아, 우리 이런 일도 했구나' '이 날 진짜 웃겼는데' '여기 맛있었는데'.. 혼잣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며 지나온 시간들을 곱씹었다.


예전 스타트업을 다닐 때도 새벽까지 회사, 대표, 동료 이야기로 늘 수다를 떨었다. 당시엔 그저 힘든 나날인 줄만 알았는데, '죠앤은 정말 회사를 사랑하는구나'를 말을 많이 들었었다. 그 때처럼 매일 고민하고 지르고 울고 웃다 보면,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나를 돌아볼 때 저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지금 당장 말할 수 있는 건, 짧은 2년의 시간 동안 일, 사람, 삶에 대한 가치관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카카오벤처스 포트폴리오 CEO가 모두 모였던 2018년 11월의 송년 패밀리데이. 시작 30분 전 Shina 대표님과 함께 막바지 진행 체크 중




1. 시야

조금만 주변을 돌아보면 참 행운이고 고마운 환경이다. 만날 때마다 빠르게 성장하고 도전하는 모습으로 자극을 주는 사람들이 있고, 모른다고 손 내밀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고, 격식 없이 술 진탕 먹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나 이 곳에서는 100인 100색 창업가를 바로 곁에서 만날 수 있고, 그들의 비전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일을 할 수 있음이 때로는 과분하면서도 소중한 기회임을 자각하게 된다.


갈수록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시간이 갈수록, 내 얕디얕은 경험이 'PR은 이래요' '이건 안 돼요' 식의 조언으로 쉽게 내뱉어 질까봐 항상 경계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제가 스타트업 다닐 때는요- 제가 PR할 때는요-'를 언급하며 도움을 드려야 한다는 강박이 꽤 있었는데, 시야와 환경이 넓어질수록 오히려 경험 공유의 압박보다는 조용히 진심으로 주변 분들을 응원할 때가 많아졌다.



2. 습관

회사와 관련된 습관이 배어있는 나를 발견할 때 실소가 터진다. 'Shine'을 검색해야 하는데 머리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여서 'Shina(대표님 닉네임)'를 치고, '채비'를 검색해야 하는데 '채티(포트폴리오)'로 치고, 프레스데이를 말해야 하는데 '패밀리데이'라고 무심결에 말해버린다.


카카오벤처스에 와서 얻게 된 정말 좋은 습관은, 책을 많이 읽게 됐다는 점이다. 그 배경에는 첫 번째로 회사 동료들이 기본적으로 다독하는 사람들이라는 점, 두 번째는 내가 공부해야 할 상식 및 지식(예를 들면 투자 용어)이 끝이 없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책 읽는 시간이 늘어났다. 세 번째는 책으로 자연스럽게 손을 뻗게 하는 환경이 된 것. 블록체인, 인공지능 같은 딥테크부터 게임, E-스포츠, 온오프라인 생활 서비스까지 정말 다양한 IT 영역을 만날 수 있기에 저절로 관심 영역이 넓어졌다. 무엇보다 창업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 일을 하다보니, 책에서 얻는 간접 경험의 수용 범위가 더욱 넓어진 느낌이다.



3. 취향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노력을 많이 한다. 어느 곳보다도 다양성과 다름을 존중하는 문화이며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치열하게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이를 부러움과 무관심보다는 오히려 나를 들여다보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그렇다면 나만이 가진 다양성은 진짜 무엇인지 찾고자 노력하게 된다. 남들이 봤을 때 단순히 요리와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치는 게 아닌,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향이 될 수 있는 나만의 취향을 발견 및 발전시킬 수 있는 과제가 계속될 것 같다.





'한 끗 차이'로 비롯되는 미래는 정말 예측 불가다.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 편하게만 살 수도 있고 늘 불평하면서 살 수도 있다. 이 쪽 일을 하며 종종 아쉬운 점이 'VC에 홍보담당자가 필요없지 않나. 포트폴리오 보도자료 써주는 대행사 역할 아니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는 거다. (누가 그렇게까지 얘기하냐 싶겠지만 수십번을 들어왔다) 딱 이들이 말하는 정도까지만 마음 먹고 일했더라면 1년이라도 버틸 수 있었을까, 오늘의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다행스럽게도 더 잘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조직을 만나 잘 적응하고 있고, 심사역이어서가 아닌 착하고 훌륭한 동료들이 있어서 매일 성장통의 위로와 자극을 받고 있다.


아직도 부족함이 드러나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 땐 부끄럽고 자괴감으로 퇴근하는 날이 많다. 특히 스타트업과 투자 업계는 너무나 빠르게 트렌드가 바뀌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남들보다 뛰어나지도 빠르지도 못하다. 그래서 화려한 퍼포먼스가 아닌 남들보다 꾸준하고 묵묵하게 일했을 때 얻는 성과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성향이 됐고, 또 이 성향이 너무나 중요하게 요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계속해서 더 배우고 성장할 기회는 무궁무진할테니 지금의 과분한 환경과 성장이 곁에 있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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