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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조은 Aug 18. 2021

퇴사하지 않고도 A급 프리랜서처럼 회사 일하기

일본 덴츠 B팀의 <당신의 B면은 무엇인가요?>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볼까요?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정말 많지만, 서핑에 품는 마음, 바다에 대한 생각, 파도를 대하는 감각, 서핑 보드를 고르는 엄격한 기준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본인만의 것이지요. 그러므로 자신감을 가지고 나만의 두근거림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70쪽)


1. 퇴사가 정답은 아니다

그렇다. 무언가에 푹 빠져서 미쳐있는 사람의 생각을 따라잡기는 영 어렵다. 이 열정에 능력까지 받쳐주는 사람들은 프리랜서의 삶에 도전한다. 개인의 개성이나 능력을 한껏 존중하는 사회문화와 기술의 발전 속에서 프리랜서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너무나도 치열한 경쟁의(이라고 추측되는) 프리랜서 시장을 당차게 입성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회사원'보다 절대적으로 많을리가 없다. 멋진 프리랜서들의 책과 브런치 글을 읽으면서도 현실은 내일 출근해야 하는 회사원으로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거다. 결국, 어쨌거나 많은 회사원들은 자신의 역량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욕구를 품고 있다.


나는 결코 퇴사가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퇴사 충동이 든 적은 많았지만, 퇴사한다고 해서 느끼는 순간적인 해방감이 내 인생의 결핍을 모두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때로 회사는 개인의 꿈틀대는 열정을 억누르는 주체로 묘사되곤 한다. 이것은 회사마다 달라서 진실일 수도, 억울한 누명일 수도 있다.


1) 왜, 회사는 개인의 열정을 억누르는 누명을 써야 하나?

2) 그렇다면 왜 회사가 개인의 열정과 개성이 표출되도록 장려해야 하나?

3) 과연 개인의 의지, 회사의 구조와 문화가 뒷받침할 수 있을까?

 

책 <당신의 B면은 무엇인가요?>를 쓴 일본의 대기업 광고회사 덴츠,가 아니라 덴츠 B팀의 대표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2. 회사원은 회사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회사원은 적어도 회사 안에서는 회사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 누구도 그가 엄하게 딴짓을 하게 놔두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다. 이게 왜 더 맞는 말인지는 덴츠 B팀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먼저 그의 정의에 빌리면 덴츠 B팀은 이런 곳이다.

B팀은 구성원이 특별히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본업인 A면과 조합해, 세상에 의미 있는 것과 앞으로의 세상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기업과 사회에 제안하는 팀이다. (6쪽)   
마치 미리 정한 것처럼 우리가 하려고 하는 두 가지 일이 'B'라는 한 글자로 잘 집약되고 통합되었다. 본업인 A면과는 다른 개인적인 측면에서 'B'이고, 플랜 B처럼 A가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울 때 대안으로 고려하는 방법을 뜻하는 'B' 말이다. (34쪽)


얼핏 들으면 자유로운 영혼들의 집합처럼 보이지 않는가? 이 책을 회사원, 그리고 조직문화를 고민하는 회사에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단순히 '회사에서 딴짓하는 방법'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프리랜서처럼 일하되, 사회와 회사에 보탬이 되는 방법을 제시한다.


내가 뽑은 덴츠 B팀의 핵심은 이 세 가지다.

1) 퇴사하지 않고도 : 소속 집단에서 월급을 받으며

2) A급 프리랜서처럼 :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취미를 활용해 (그것도 A급으로!)

3) 회사 일하기 : 회사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방법


그중 가장 강조하고 싶은 건 세 번째다. 얼마나 뛰어난 재주를 부릴지는 몰라도 회사의 목표 달성과 문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회사의 좋은 일원이라고 할 수 없다. 덴츠 B팀은 회사의 단기 이익에서 나아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역할까지 수행하는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분명 덴츠 B팀이 존재하는 이유는 개인이 아니라 회사를 위한 것이다. 그들의 B면 프로젝트는 언제나 구성원, 사회, 회사 삼박자의 이익을 고려한다. B팀이 추진한 프로젝트는 개인의 취미 활동 극대화가 아니라 1) 사내 구성원의 동기 부여를 높이고 2)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낳는 일을 하고 3) 홍보/경영/비전 측면에서 회사에 보탬이 된다는 거다. (이미 이 책을 통해 덴츠 B팀을 널리 홍보한 데부터 회사의 철학과 독특함이 돋보인다)



3. 누가 B팀이 될 자격이 있나?


덴츠 B팀의 담당 B면 목록


따라서 덴츠 B팀은 단순히 개인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집합소가 아니다. 프리랜서 개념과도 다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회사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인가? 내가 무언가를 미친듯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내 B면이라고 주장하면서 B팀에 소속될 수 있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B팀의 답은 '무언가를 A급으로 좋아한다면, B면만으로 A면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음'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은 '호기심 제일(Curiosity First)'이라는 B팀의 핵심가치다. 호기심에서 발동하는 B면 프로젝트라면, 그것을 주도하는 개인이 오래 끌고 갈 의지를 갖고 있고 회사와 사회에 이익이 되는 방법까지도 고안해낼 수 있다는 거다.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옮겨가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일을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옮겨갈 수 있는 그런 일이라면 전력을 다해 진행한다. (40쪽)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이자 물음에 대한 나만의 답변도 찾아볼 타이밍이다.


당신의 B면은 무엇인가요?


나의 B면은 '영향력'으로 정의하고 싶다. 나는 A면(본업)을 B면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을 만큼, A면과 B면이 많이 겹치는 편이다. 직업 특성 상 회사라는 브랜드를 다양한 사람과 사회에 영향력을 주는 일을 하는데, 이를 위해선 갖가지 개인의 B면을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내 직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덴츠 B팀에는 자유, 다도, 규칙과 같은 특이한 B면을 담당하는 직원도 있다. 취미 같아보이지만 정말 그 분야에서만큼은 미쳐있는 전문가다. 맥주가 B면인 직원이 있는데, 그 따기 어렵다는 (어떤 자격증인지 나와있지는 않지만) 맥주 자격증도 3개나 있다고 한다. 한편 히로시마가 B면인 직원도 있다. 히로시마 출신인 그는 히로시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그에게는 익숙한 사실이 타인이 듣기에는 흥미로울 수 있다.


현재의 A면과는 조금 거리가 먼 내 B면을 더 소개하자면, 내 취미들은 대체로 깊이는 얕지만 종류가 다양하다. 그 이유는 역시나 영향력 때문이다. 뭐가 됐던지 간에 그것으로 인해 영향력을 주고 받는 행위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맥주에 빠져서, 혼자서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며 하루에 2~3개씩 브루어리를 다닌 적이 있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는 것이 좋았고, '죠앤, 나도 맥주 추천해줘요!'라는 나의 영향력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어 좋았다.


이밖에도 많다. 요즘에는 맥주 대신 부쩍 회를 탐구하는 B면이 생겼다. 지난해 회에만 쓴 돈이 500만원이 넘는데, 올해는 더 커졌을 것이다. 위에 히로시마,라고 하니 내가 좋아하는 도시인 고향 대구에 대해서도 깊게 파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 사이에서 대구 홍보대사로 불리기 때문) 뭔가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패드로 일러스트를 그리고, 화분을 키우고, 건강한 재료로 요리를 한다. 좋은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왓챠피디아 평점 5.0을 준 영화들을 몇 년째 돌려보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한다. 스타트업 창업자 인터뷰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언젠가 아마 이것들을 모두 모아 더 큰 영향력을 내는 B면 프로젝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해보니, 이미 이중 일부는 A면에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4. A면과 B면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노력

영향력 이라는 말은 꽤나 추상적이다. (다행히 덴츠 B팀에서는 추상적이어도 상관 없는 모든 B면을 응원한다) 어느새부턴가 내 직업을 단편적인 기능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를 '무엇'을 잘하는 사람으로 정의해버리면, 그 '무엇'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일들은 내 것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영향력 으로 정의 내리니,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회사 밖에서도 함께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협업할 사람들이 많아서, 더욱 A면과 B면의 결합을 살릴 범위가 넓어졌다. 이를테면 #스타트업 #조직문화 #창업자 에 대한 '호기심'을 내 A면을 살리는 데 발휘할 수 있고, 그것은 여느 때보다 긍정적인 성과로 나올 때가 많았다.


덴츠 B팀은 이 현상을 'AxB'로 설명한다.

구성원에게 듣는 AxB를 위한 조언
1. 먼저 본업을 충실히 한다
2. 무리해서 조합하지 않는다
3. 경력과 인생의 폭이 넓어진다
4. A면과 B면은 반대편에 있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간다



5. 제대로 된 딴짓을 궁리하게 만드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덴츠 B팀이 주는 영감은 개인을 향하지만은 않는다. 조직에게도 향하고 있다. 많은 회사원들은 퇴사하지 않고도 회사 안에서 온전한 자기로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렇다면 회사는 그러한 개인의 생산성과 협업 능력을 올려줄 환경을 마련하고자 궁리한다. 결국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회사가 억울한 누명을 벗어가면서까지 노력해야 하는, 조직문화에 대한 일이다. 개인의 넘치는 열정과 '딴짓 궁리'마저 어떻게 A면에서 펼치게 할지도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이다.


물론 B팀을 꾸릴 여유도 없는 회사에서 억지로 B팀을 꾸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와 태도의 ‘합의' 과정이다. A면의 인재들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 회사에서 일할 때도, 회사의 역할은 많은 개인이 B팀의 사고 방식을 갖기를 장려해야 한다. 그저 덴츠의 사례를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어떻게 개인의 호기심을 본업에 적용하도록 장려하는 문화를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할 큰 숙제다. 물론 정답은 없는 문제이기에 더 많은 회사원 개인과 조직이 선례를 만들어 경험담을 전파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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