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가장 가까운 바깥에서
초중학교 시절 엄마는 멀었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엄마도 같이 떠났고
나는 늘 할머니와 남았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졌고
그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졌다.
그 시절 엄마도 나도 다정하지 못했다.
엄마는 사는 일이 고돼서였을 테고,
나는 다정을 배우지 못해서였다.
그럼에도 난 문득문득
엄마의 다정이 그리웠다.
나이가 들고
같은 세계를 나눌 친구들이 생기자
엄마가 다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졌다.
엄마가 친구 같은 존재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쉽긴 했지만
그 빈자리는
다른 관계들로 채울 수 있었다.
엄마의 다정이 다시 그리워진 건
결혼을 하면서였다.
그때만큼은 정말 그리웠다.
하지만 엄마는
성에 차지 않을 만큼만 다정했다.
엄마에겐 오히려
딸이 쌀쌀맞았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느끼는 엄마는 그랬다.
그래서 엄마가 덜 다정해도 서운하지 않을 만큼
먼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내 새끼들에게
남편에게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가끔씩 만나는 엄마는
덜 다정해도 괜찮은 척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가까운 듯 멀게,
다정한 듯 안 다정하게 시간이 흘렀다.
엄마가 나이를 먹고
나도 엄마의 나이를 살게 되면서
덜 다정해서 서운했던 엄마가
조금씩 이해되었다.
내가 이해한 만큼만 엄마에게 다정해졌다.
그만큼 마음도 편안해졌다.
우리는 그렇게 살갑지는 않아도
조금은 다정한 모녀가 되었다.
종종 전화를 걸어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해마다 몇 차례 여행도 같이 다녔다.
엄마는 점점 더 다정해졌다.
하지만 나는 또 내 세상이 생겼다.
그만큼 멀리 달아났다.
섭섭지 않을 만큼 정을 주고
서운하지 않을 만큼 다정하게 지냈다.
엄마도 그랬는지는 잘 모른다.
나는 엄마가 오래오래 내 곁에 있을 거라
믿고 있었으니까.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늘 다 좋다고, 다 괜찮다고 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과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만 먹었다.
엄마가 가고 싶은 곳도 짐작이 어렵다.
우리가 가는 곳이 다 좋다며
당신이 가고 싶은 곳은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하고 싶어 했던 일 역시 잘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이 늘 괜찮고, 다 좋다고 했으니까.
나는 엄마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너무 없었다.
그렇게 먼 듯 가깝게,
안 다정한 듯 다정한
엄마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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