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 시간에 새겨진 것

루틴의 힘

by 감꽃

매일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매일 같은 시간에 밖으로 나가는 습관을 만드는 방법뿐이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손에 든 것을 건네면 말했다.

"엄마 한 번 써봐"

"뭐야?"

"캘리그라피 펜인데, 엄마 생각이 나서 샀어."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캘리그라피 펜과 용지가 내게로 왔다.

어느 날,

우연히,

하찮게,

불쑥,

내게로 왔다.


호기심에 마음에 드는 글씨체를 찾아 따라 쓰기 시작했다. 쓰고 보니 그럴듯해 보여 쓰고, 쓰고, 또 썼다. '몰두'라는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던 습관이 불쑥 튀어나왔다. 호기심에 한 문장을 쓰고, 겉멋에 두 문장을 쓰고, 어디 보자 하는 맘에 문장을 쓰고, 그렇게 날마다 한두 시간씩 이 년을 썼다. 다 쓴 붓펜이 책상 가득 쌓이고 아름다운 시 구절과 가슴을 울리는 명문장이 적힌 캘리그라피 용지가 수북수북 쌓였다.


시간의 축적은 무딘 날도 벼릴 수 있는 힘이 있다. 멋 모르고 따라 쓰던 글씨가 조금씩 모양을 갖춰가는 것이 느껴졌다. 쓰다 보니 글의 내용에 따라 글씨체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신기한 순간도 가끔 마주할 수 있었다. 나만의 것을 담으려고 애쓴 시간이 주는 선물 같은 순간이었다. 그 지점은 누구나 노력하면 닿을 수 있는 곳, 바로 거기까지였다.


물이 끓고 끓으면 마침내 물방울이 수증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날아오르는 순간이 온다. 수많은 노력의 시간이 쌓였을 때 비로소 넘을 수 있는 지점, 임계점을 넘어 도약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그 임계점을 넘어서야 하는 순간, 한계가 왔다. 그때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힘겹게 걷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재미는 줄고 들인 시간에 비해 눈에 보이는 건 없는 날들이었다.


마음이 힘드니까 몸이 신호를 보냈다. 오십견이 찾아왔다. 매일 같은 자세를 하면 또 다른 방향으로 근육을 풀어줘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두 시간이 한 시간이 되고 매일이 한 달이 되어 시간이 겅충겅충 뛰어갔다. '매일매일'이 '띄엄띄엄'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큰 변화였다. 그렇게 캘리그라피 세계로 향하던 열정의 문은 조금씩 닫혔다.


같은 시간이면 하릴없이 펜을 들고 앉아있거나 캘리그라피로 쓰면 좋을 시와 문장을 찾아 기록하곤 했다. 예전처럼 매일 펜을 들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시작할 때면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는다.


글씨로 채워지던 시간이 사라지자 하루가 갑자기 헐거워졌다, 그 헐거워진 틈으로 밀쳐두었던 생각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었다.


오십견은 루틴의 끝처럼 찾아왔지만, 지나온 시간을 몸이 기억한 흔적이었다. 루틴은 나를 얽어매던 틀이 아닌 여기까지 데려다준 길이었다. 그리고 날마다 같은 자리에 나를 데려다 놓고, 조금씩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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