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익을 때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ㅡ백석, '국수' 중에서
입 안에 군침이 돌고 시큼한 냄새가 코끝을 톡 쏜다. 김치가 익어 만두 만들기 좋은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돼지고기 간 것, 숙주, 두부, 쪽파, 마늘, 당면, 밀가루, 계란, 후추...
만두에 들어갈 재료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만두는 늘 이렇게, 냄새에서 시작된다. 겨울이 끝나가는 냄새다.
결혼해서 처음 맞이한 설, 설음식 준비 중 하나가 만두 만드는 일이었다. 만두는 준비할 것도 많고 손도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신혼 초에는 시댁식구들이 어려웠다. 그런데 만두를 만드는 시간은 밀가루와 물이 섞이듯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었고, 시댁이라는 가족 안으로 조금씩 스며들 수 있는 틈이 되어주었다.
밀가루 반죽은 가루일 때는 바람만 스쳐도 흩어진다. 물을 너무 적게 넣으면 좀처럼 하나가 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한꺼번에 들이부으면 질척해져 손에 달라붙는다. 사람 사는 일도 그렇다. 부족하면 부서지고, 과하면 감당이 안 된다.
반죽의 농도를 조절하지 못해 난감해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말했다.
“국수 반죽보다는 질고, 수제비 반죽보다는 되게 해라.”
그 한마디는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질금질금 물을 넣어가며 농도를 맞추고 있는데, 어머니가 반죽을 손끝으로 살짝 눌렀다.
“말랑하지만 질척이지 않고 되직하니, 이만하면 됐다.”
알맞은 농도를 찾은 반죽은 표면이 매끈해질 때까지 치대는 일만 남았다. 손바닥으로 누르고, 접고, 주물렀다. 치댈수록 반죽은 점점 매끄러워졌다. 어느 정도 매끄러워졌을 때 랩을 씌워 실온에 가만히 두었다. 숙성의 시간을 거치며 반죽은 한결 부드러워져, 만두피로 쓰기 좋은 상태가 되었다.
인생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잠시 멈춰도 되는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가장 깊은 변화가 일어난다.
반죽이 숙성하는 동안 만두소를 준비했다. 김치와 으깬 두부, 살짝 데친 숙주 등 모든 재료의 물기를 짜고, 당면을 삶았다. 물기를 뺀 재료들을 잘게 다졌다. 칼질은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지고, 볼 안에서는 만두소가 천천히 한 덩어리가 되었다. 제각각이던 재료들이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다.
완성된 만두소를 납작하고 둥글게 밀어놓은 만두피에 올리고 감싸면 만두가 된다. 만두피를 밀고 있는 어머니의 손놀림이 빨라지면, 만두소를 넣는 내 손도 덩달아 바빠졌다. 손이 바빠질수록 입도 바빠졌고, 그만큼 서로 간의 경계는 조금씩 허물어졌다. 그 시간만큼은 며느리라기보다 함께 음식을 만드는 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설날이 다가오면 우리는 늘 만두를 만들었다.
어머니가 만두를 만들지 못하게 된 이후로 더 이상 만두를 만들지 않는다. 만두는 사 먹는 음식이 되었고, 기다려야 할 시간도, 옆에서 지켜봐 줄 사람도 사라졌다. 그래도 가끔 익은 김치 냄새가 나면 만두가 떠오른다. 어머니의 빠른 손놀림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