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 지금을 담는 그릇

달도 담고 꽃도 담고 시간도 담는다.

by 감꽃

나는 둘레를 얻었고

그릇은 나를 얻었다.

-안도현, '그릇' 중에서


식탁 위에 밥그릇 두 개. 이 자리에 놓인 그릇은 여러 번 바뀌었고,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다. 크기가 점점 작아져 밥그릇이라 부르기엔 소박하다.


흙으로 만든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물건이 그릇이다. 그릇은 음식을 저장하고 담기 위해 태어났다. 겹겹이 시간이 쌓이며 그릇은 기능을 넘어 이야기를 품게 되었다. 비어 있던 공간에 사연이 스며든 시간, 그것이 곧 그릇의 역사다.


그릇도 주인을 닮아간다. 가지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많던 시절에는 큰 것들이 좋았다. 밥그릇 역시 그랬다. 큰 그릇에 담긴 밥을 먹으며 큰 꿈을 꾸었고, 크게 화를 내고, 크게 웃기도 했다.


그릇이 작아진 건 채울 것이 적어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리 채워도 더 이상 담기지 않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알았다. 잘 비워야 더 잘 채울 수 있고, 굳이 가득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담기 위해 부지런히 채웠지만, 담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했다. 그 단순한 사실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게다가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먹을 것만이 아니었다. 오규원은 밥그릇에 달을 담았고(「여름에는 저녁을」), 애주가들은 술잔에 달을 담았다. 꽃을 사랑하는 이들은 수반에 꽃을 담았고, 마음이 시린 이들은 찻잔에 온기를 담았다. 오래된 도자기에는 시간과 함께 쌓인 이야기가 담겼다.


도자기는 깨지기 쉬운 흙으로 빚어졌으나, 역설적으로 오래 살아남았다. 오래된 도자기들은 더 이상 음식을 담지 않지만 늘 가득 차 있다. 이야기를 품은 시간들로.


식탁 위에 밥그릇 두 개. 남편과 둘이 앉아 밥을 먹는다. 그릇은 비어가고 빈 자리에는 지금이 담기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삶의 무늬: 시간에 새겨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