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 겨울을 건너는 마음

마침내 봄에 이르기를

by 감꽃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강이 하늘로 흐를 때,

명절 떡살에 햇살이 부서질 때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성복, '세월의 습곡이여, 기억의 단층이여'중에서


봄동이라 소리 내면 봄이 굴러오는 것 같아 '봄동, 봄동, 봄동!' 자꾸 불렀다. 계속해서 부르니 입안에 봄냄새가 번지는 듯했다. 봄동은 찬서리 내리는 가을과 눈보라 치는 겨울을 견뎌낸 배추다. 엄동설한을 견뎠기에 가장 진한 봄을 품고 있다.


"엄마, 어제는 마트 가서 봄동 샀어."

무심하게 꺼낸 말에 엄마의 눈이 반짝 했다.

"벌써 봄동 나올 때가 됐나... 뭐 해 먹었는데?"

"겉절이."

"겉절이는 바로 해서 먹어야 맛있지."

"엄마는 봄동으로 뭐 해 먹고 싶어?"

봄동전, 봄동 된장국, 봄동 비빔밥... 봄동 요리를 떠올리는 엄마 얼굴이 조금씩 환해졌다. 봄동, 봄동하는 내 입에서는 봄냄새가 나는 듯했다. 주사 바늘로 멍든 엄마 손을 잡았다. 뼈만 앙상한 엄마를 안았다. 엄마도 이 봄냄새를 맡았을까.


봄동은 모든 잎들이 바깥으로 벌어져 잎 하나하나가 속속들이 겨울을 이겨냈다. 을을 지나고 겨울을 건너 봄에 닿기까지, 세 계절을 온몸으로 통과한 채소다. 모든 시간을 지나고서야 봄을 가져온다는 이름을 얻게 된 봄동.


명작동화와 전래동화의 마지막 문장도 그렇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결말은 어느 날 덜컥 주어진 문장이 아니다. 한때는 그 뻔한 문장이 싫었다. 그러나, 이제야 알 것 같다. 수많은 시련을 통과한 이야기라면, 끝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냥 '행복하게'가 아니라 '오래오래 행복하게'여야 한다는 것을.


엄마는 매일 아침 한 시간 넘게 공원을 걷는, 누구보다 성실한 건강관리자였다. 소식했고, 바지런했다. 국가 건강검진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암은 왔다. 엄마는 지금 혹독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


엄마도 봄동처럼 추운 겨울을 무사히 건너, 마침내 봄에 이르기를. 그래서 동화 속 마지막 문장처럼 말할 수 있기를.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

오래오래 사랑했습니다.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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