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품은 뭇국 한 그릇
흥부 부부가 박덩이를 사이하고
가르기 전에 건넨 웃음살을 헤아려 보라
금이 문제리
황금 벼 이삭이 문제리
웃음의 물살이 반짝이며 정갈하던
그것이 확실히 문제다
-박재삼, '흥부 부부상(夫婦像)'중에서
수분이 가득하고 은은한 단맛이 도는 무를 보니 소고기 뭇국이 생각났다. 국을 끓이려고 하니 과거의 내가 말을 걸었다. 지금의 '나'보다 과거의 '나'가 힘이 센 경우가 있다. 추억의 힘이 강할 때다. 특히 음식 앞에서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다.
새로 이사한 동네의 작은 식당에서 신혼의 남편과 둘이 앉아 점심을 먹었다. 그때는 둘이 함께라면 무얼 먹어도 다 맛있을 때였다. 그 시절의 남편은 나름 달달했다. 식당에서 소고기뭇국을 먹었는데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그래서 데리고 간 식당이었다. 어떤 음식이었어도 나는 이미 맛있게 먹을 준비가 돼있었다. 그런데 진짜 맛있었다. 소고기 뭇국은 소금으로 간을 한 맑은 국이었다. 시원하고 슴슴했다.
그전까지 먹었던 소고기뭇국은 주로 제삿날 먹는 음식이었고, 집간장으로 간을 한 국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 맛을 재현하기 위해 애썼다. 단번에 그 맛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결국, 그 맛에 가까이 갔다. 그 맛에 반해 집간장보다 소금 혹은 집간장 조금에 소금으로 간을 한 소고기 뭇국을 좋아하게 되었다.
냄비에 소고기 양지머리를 넣고 참기름에 달달 볶는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적당량의 물을 붓고 네모나게 나박나박 썬 무를 넣고 팔팔 끓인다. 어슷 썬 대파와 고추, 마늘을 넣고 재료의 맛이 잘 배어 나도록 뭉근하게 끓인다. 간은 소금 혹은 집간장 조금에 소금으로 한다. 다시마 한 조각을 넣으면 감칠맛이 나면서 맛이 깊어진다.
남편과 나는 그날의 소고기뭇국을 좋아해서 무가 달고 시원해지는 가을부터 다음 해 봄까지 "오늘 소고기 뭇국 끓여 먹자"는 말을 자주 했다.
그날의 소고기뭇국은 자극적인 맛도, 시각적으로 예쁜 음식도 아니었다. 평범한 한 그릇 뭇국이 국을 먹기 전 미리 당도한 마음과 서로를 향한 반짝이는 웃음으로 온기를 더함으로써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음식은 어떤 이에게는 한 끼 식사이고, 어떤 이에게는 따뜻한 위로이고, 어떤 이에게는 오래된 추억이며, 어떤 이에게는 인생이다. 그래서 음식은 먹은 사람 수만큼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음식 하나가 작은 우주다. 많은 사람이 먹을수록, 우주는 넓어진다.
우리에게 가장 넓은 우주를 가진 음식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