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밥의 자리
나는 여기 있다고
내 이름은 바람에 실려
누군가의 귀에 닿기를 바란다
사랑은 응답이 아니라
말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는 오늘도 말한다
나는 존재한다고
-최승자, '아무도 아닌 날' 중에서
고무나무 화분에 괭이밥 꽃이 피었다. 노란색의 작고 예쁜 꽃이 별을 닮았다. 잠시 바라보다 "여긴 네 자리가 아니야."라며 괭이밥을 화분에서 뽑았다.
며칠 뒤 군자란 화분에서 다시 괭이밥을 발견했다. "어? 또 너야."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괭이밥의 생명력은 대단했지만, 우리 집 식물의 기준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 화분은 군자란이 있어야 할 곳이었다.
한참 후 수국 화분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키우고 있는 괭이밥을 보았다. 바람도 잘 들고 볕도 좋은 자리였다. 괭이밥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뿌리내릴 흙 한 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 정원에서 괭이밥은 잡초였다.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 뽑았다.
뿌리내릴 곳을 잃은 괭이밥은 사방을 둘러보다가 사랑초 화분을 보았다. '저기라면…’ 잎모양이 비슷해서 잘 숨어 있으면 들키지 않을 만했다. 그래서 사람 손에 슬쩍 붙었다가 사랑초 화분에 '툭' 떨어져 얼른 뿌리를 내렸다. 하루라도 빨리 꽃을 피우고, 단단하게 여문 씨앗을 멀리 안전한 땅으로 보내는 꿈을 꾸면서.
괭이밥은 화분을 살피는 인기척이 나면 재빨리 키를 낮추고, 잎을 접고 몸을 웅크려 사랑초 사이로 숨어들었다. 들키지 않고 지낸 며칠 사이, 괭이밥은 드디어 꽃을 피웠다. 별처럼 작은 노란 꽃은 낮게 엎드려 있었지만 밝게 빛났다.
원하지 않는 장소에 자라거나, 다른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식물을 우리는 잡초라고 부른다. 그것은 식물의 성질이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기준이다. 괭이밥은 제 방식대로 싹을 틔우고 잎을 키우고 꽃을 피웠을 뿐인데, 우리 집 정원에서는 잡초가 되었다. 식물 탓이 아니라, 어디까지를 내 정원으로 인정하느냐의 잣대 때문이다.
사랑초 화분에서 괭이밥 꽃을 발견하고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괭이밥은 작은 잎을 펼치고, 햇빛을 향해 가느다란 줄기를 세우고, 별처럼 노란 꽃을 피웠다. 사랑초와 닮았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조금은 어울려 보인다는 이유로, 나는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다. 그 순간 괭이밥은 잡초가 아니라 그냥 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