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우정>( 김달님 글, 보물창고)을 읽고
한때 네가 사랑했던 어떤 것들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
네가 그것들을 떠나보낸다 해도
그것들은 원을 그리며
너에게 돌아온다
그것들은 너 자신의 일부가 된다
-앨런 긴즈버그, '어떤 것들'
우리의 스무 살이 다른 누구의 스무 살과 달랐듯이 서른 살도 마흔 살도 모두 고유하다. 당연히 일흔 살과 여든 살의 삶도 저마다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년을 떠올리면 비슷한 모습을 상상한다.
부모님들의 나이 들어감을 지켜보면서 나이 들면서 버려야 할 것과 지키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도 분명해졌다. 하지만 나이 들어감은 그런 생각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돌발상황을 곳곳에 숨겨놓고 기다린다. 그래서 도착하지 않은 노년의 삶은 두렵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시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년의 시간을 쉽게 일반화된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뜻밖의 우정>에서 김달님 작가는 구체적인 노년의 삶을 보여주며, 노년을 평면적으로 보는 시선에 제동을 건다. 이 책은 노년을 탐구한 여정이자, 뜻밖의 우정을 나눈 기록이다.
작가는 '소중하고 유일무이한 노년'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노년 탐구 여정을 시작한다. 우리는 같은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시간의 길 위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생의 한 시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수많은 ‘모름’과 ‘모를 수밖에 없음’을 직면하는 일이다”(p74)
누구에게나 하루의 시간은 흘러가고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어두워지는 북새의 시간도 찾아온다. 나에게도 인생의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는 북새의 시간은 오고 있다. 이 책은 그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지를 생각하게 한다. 여전히 우리 곁에는 수많은 노년이 존재하고 그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예순일곱에 검도 6단을 딴 권순자님, 힙합에 도전하는 정열님, 은퇴 후 새로운 배움을 통해 너무 좋은 날을 맞고 있는 우경님, 세대를 넘어 우정을 만드는 이승기님, 홍자와 옥순님, 정애자님, 미애님, 미연님, 윤자님... 수많은 그들의 이야기는 노년이 단지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는 시기가 아니라, 여전히 새로운 삶을 시도하는 시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노년의 시간을
"늙을수록 마음 쏟을 일이 필요해. 좋아하는 일에 시간 쓰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시간이 내 편이 돼."(p59)
라며 스스로 시간을 채워 가며 살아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단순히 시간이 흘러가는 일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 가느냐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여든의 윤자 씨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묻자, 작가는 삶에 감사하던 그녀의 말을 다시 전한다.
"'작은 것은 더 작은 것의 큰 것이다.' 이 마음을 잊지 않으면 내가 가진 작은 것에도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다"(p120)
사실 윤자 씨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좌절의 시간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게 만드는 힘은 "막연히 노년의 시간을 두려워하거나, 그 시간에 깃들어 있는 여전한 별빛을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갈 소중한 친구들에게. 노년의 시간으로 씩씩하게 같이 가보자고 말하고 싶은 마음."(p171p~172)이라고 말한다.
노년을 탐구한 여정 후 가장 큰 변화를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노년의 시간에도 슬픔 못지않은 분명한 기쁨이 존재한다는 것.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떠나보내는 날들 속에도, 나를 살게 하는 무언가가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는 것. 그때에도 여전히 사랑과 우정 속에 머무르며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 기대를 곁에 둘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장 큰 희망이다."(p255~p256)
<뜻밖의 우정>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생이 쉬어 가는 자리가 깊은 책이다. 그래서 생각이 오래 머무는 행간이 넓은 책이다. 그들의 노년에 나의 노년을 겹쳐보면서 그들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은 노년이 비록 찬란하지는 않아도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작가의 말처럼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나의 노년을 걸어갈 수 있는 손전등 하나 얻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