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 낭만을 싣고

by 감꽃

나는 이게 모두 선물인 줄을 몰랐던

혈기 충천하던 젊은 날에는

그것들이야 원래부터 있는 것이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없을 수도 있고

있는 것이

정말 기적이며 정말

기막히게 신기한 일임을 알지 못했다

-배창환, '선물'중에서


자전거는 빠르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교통수단이다. 사람 한 명이 다닐 정도의 길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자전거를 탈 때 느끼는 속도감과 풍경의 변화는 자유와 낭만을 안겨준다.


자전거가 영화와 문학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영화감독과 작가들에게 꽤 낭만적인 교통수단으로 여겨진 것 같다. 1982년에 개봉한 SF영화 <E.T.> 대표적인 예다. 이티의 초능력으로 자전거를 하늘로 띄우는 장면(글제목 바탕그림) 자전거에 대한 환상과 낭만을 잘 보여준다. 나에게도 자전거는 그런 존재다.


서른이 넘어 자전거를 배웠다. 오른쪽으로 넘어지는가 싶더니 왼쪽으로 넘어졌다. 생각처럼 균형을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던 남편이 슬며시 손을 놓았다. 그런데도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고 나아가고 있었다. 두려움이 사라지니 그 어렵던 균형도 저절로 잡혔다. 그 짧은 순간 자유를 느꼈다. 물론 멀리 가지 못하고 자전거는 곧 넘어졌다. 하지만 그 경험은 자전거를 타는 첫걸음이 되었다.


자전거 타는 걸 몰랐을 때 남편은 가끔 자전거 뒷좌석에 나를 태웠다. 그때는 사랑의 콩깍지가 씌어있을 때였다. 힘들었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고 남편은 나를 태우고 다녔다.


부모에게 아이들의 '처음'은 모두 눈물겨운 감동이다. 아이들이 처음 자전거를 탈 때도 그랬다. 아이들은 세발자전거에서 시작해 보조바퀴가 달린 네발 자전거를 거쳐 두 발 자전거를 탔다.


딸은 재미있을 것 같으면 일단 도전해보는 성격이라 자전거 타는 법도 빠르게 익혔다.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자 거침없이 돌아다녔다. 뒷자석에는 동생을 시작으로 또래 친구들까지 태우곤 했다. 하지만 자전거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타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딸과 달리 아들은 두려움으로 자전거를 혼자 타기까지 시간이 더 걸렸다. 그렇지만 자전거 타는 것을 즐긴 건 아들이었다. 좋아했고 오래도록 타고 다녔다.


아들이 다녔던 중학교는 벚나무가 양쪽에서 마주 보고 서 있는 길을 지나가는 곳에 있었다. 아들은 아침저녁으로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오갔다. 3월 말이 끝나갈 즈음이면 실시간으로 벚꽃 소식을 전했다. 봄이 오고 지나가는 동안, 귀가하는 아들의 자전거에는 꽃 향기가 실려왔다.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까지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갔다. 야간자율 학습을 하고 돌아오는 밤길, 아들의 자전거에는 가끔씩 별도 실려왔다. 캄캄한 밤에 별이 얼마나 빛나는지, 얼마나 많은지, 그 별들의 소식을 엄마한테 실어 날랐다 .


이제 자전거는 남편의 주된 교통수단이 되어 가까운 거리를 동행하고 있다. 그런 어느 날 남편은 자전거 한 대를 더 사왔다. 내 자전거라고 했다. 나는 그동안 걷거나 자동차를 타면서 자전거를 잊고 있었다. 아직까지 내 자전거는 멈춰있다. 나는 이제 자전거에 무엇을 싣고 다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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