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장벽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베를린 회사에 합격하면서 나는 내 인생에 뜻하지 않았던 독일어를 하게 되었다.
중,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던 나는 대학교 때 교양으로 독일어 수업을 잠깐 들은 것이 다였다. 그리고 해외 취업을 준비하면서 혹시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으로 독일어를 독학했다. 독학할 때는 듀오링고를 끼고 살면서, 영어랑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재밌게 배웠었다. 그리고 어렵다 느껴질 때면 어차피 독일 안 갈지도 모르는데 라는 심정으로 마음 편히 접어두었다가 다시 펴서 공부하는 것을 반복했던 것 같다.
베를린에 와서 초반에 회사를 다니면서는 영어로 대화하고, 회의를 이끌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어는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점차 익숙해져 가면서 독일어를 조금씩 시작하게 되었다. 독일에서 독일어를 못하는 외국인은 생활 터전을 잡고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처음 독일에 와서 해야 하는 '집 구하기, 사무소에 집 등록, 은행 계좌 열기, 취업 비자 발급'이 모든 과정이 독일어를 필요로 한다.
맨 처음 도착하자마자 집을 구하면서 수십 개의 메일을 보냈는데, 영어로 보내다가 회사 동료의 도움을 받아 독일어로 보내니 훨씬 답장이 많이 왔다. 그리고 집 등록을 하러 Bürgeramt에 갔을 때는 직원이 영어를 하지 못해서 구글 번역기로 대화를 해야 했었다. 집 등록을 한 후에 은행 계좌를 열러 갔을 때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있는 은행은 한정되어 있다며 1주 후에 다른 지점으로 예약을 잡아줬었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인 취업 비자 발급 때도 수많은 독일어 서류와 증빙 서류를 준비해야 했었다.
외국어를 계속 사용하면서 살아야 하는 환경에 있으면서 깨달은 점은 언어는 생활이 되어야 빨리 는다는 것이다. 내 핸드폰 환경 설정이 '독일어'로 되어있고 내가 슈퍼나 레스토랑이나 회사가 아닌 다른 일상생활을 할 때에 무조건 독일어로 이야기하고 출근할 때 독일어 라디오를 들으면서 일상에 녹아들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자신감이다. 내가 독일인이 아니기 때문에 내 발음을 다른 독일 사람이 알아듣기 어려울 수도 있고, 문장 구조가 약간 틀릴 수도 있다. 혹은 내가 문법책에서 본 대로 말했는데, 현지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표현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한 최대한 독일어로 자신감 있게 말한다. 다행히 내가 독일어로 회의를 진행해야 하거나 리포트를 쓸 필요는 없기 때문에 나는 내 일상 용어만 독일어로 바꾸면 된다. 그러니 더욱 못하면 배우겠다는 자세로 시도해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흥미로운 콘텐츠 찾기. 내가 영어를 계속 붙잡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글이 항상 Medium에 있고, 내가 관심 있는 디자인 관련 팟캐스트가 영어로 진행되며, Netflix의 Stranger things2나 다큐멘터리 등을 영어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어를 공부할 때에 이 부분이 약간 어려운데, 재미있는 콘텐츠를 찾기가 쉽지 않다. 좋아하는 독일어 노래도 없고, 독일 영화나 블로그 글도 재미와는 거리가 있다. 현재까지는 동화책이랑 Youtube (Learn German with Ania) 영상 말고는 찾지 못했는데, 크게 재미있지는 않아 빠져들만한 콘텐츠는 아직도 찾는 중이다.
가끔은 언어의 장벽을 느끼면서 내가 왜 한국어 환경에서 안 살고, 왜 이렇게 고생하면서 영어도 아닌 다른 언어로 살고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언어의 Comfort Zone을 넓히는 것도 하나의 큰 재미이고 모험이다. 그리고 생각만큼 늘지 않는다 생각되다가도 가끔 독일인 택시 기사 아저씨나 슈퍼마켓 아줌마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헛되지는 않았구나 싶다.
그리고 독일어를 잘하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이렇게 다양한 음료를 선택해서 마실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