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결국에는 방법이다.
2007년 3월,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한 나는 3월 말경 상주 연구실(Lab)에 처음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4학기 과정인 대학원에서는 2학기 말에 지도교수를 선정하지만, 나는 1학기 초반에 지도교수를 선정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부터 연구하고 싶은 분야와 전공이 명확했기 때문에, 지도교수 선정에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을 끌면 논문과 관련된 공부 시간이 부족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가 연구하고자 했던 분야는 스포츠 정책과 스포츠 외교였다. 학부 3학년을 마친 후 1년 반 동안 해외 어학연수와 여행을 하며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현지 선생님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이를 통해 스포츠의 가치와 역할,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능을 직접 경험하고 체득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대학원 진학과 연구 주제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스포츠 외교라는 학문은 대학원 교육과정에서 명확하게 구조화된 전공 분야로 존재하지 않았다. 여러 방면으로 확인해본 결과, 스포츠 산업경영 분야에서 행정, 정책, 외교, 경영, 마케팅 등을 연구 영역으로 다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학 계열의 정책 연구보다 산업경영 계열에서 외교와 정책을 연구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해당 분야의 지도교수를 빠르게 선정했다. 물론, 지도교수와의 사전 상담과 연구실 선배들의 조언을 받은 후 결정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학원에는 상주생이라는 개념과 비 상주생이라는 개념의 과정 생들 부분이 존재한다. 상주생이란 급여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지만 지도 교수 밑에서 지도 교수님과 연구실을 공유하거나 별도로 교내에 마련된 연구실에서 24시간 연구하면서 논문을 작성하고 프로젝트에 참여 하는 지도 교수의 보조자적 역할을 하는 과정생들이다. 이 인원 구성에는 졸업을 하고 강사를 뛰고 있는 박사 선배들도 포함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연구실 내 상주생이라는 구조 내에서의 아주 엄격한 서열 문화가 존재한다. 그리고 비상주생은 직장인 또는 별도의 직업이 있는 상태에서 석사 또는 박사 과정에 들어온 사람으로써 같은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공부하는 과정생들이며 보통 상주 연구생들에게 전공 공부의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우리가 흔히 누구누구 교수의 문하생이라고 한다면 상주생과 비상주생을 모두 포함해 부르는 말이지만 상주생의 학문적 능력과 비상주생의 학문적 이해 능력과 수준은 분명히 다르다고 내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공부의 양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학원에 석사 과정에 입학 하자마자 2007년 3월 말에 지도 교수님을 선택하고 한 Lab에 소속된 상주생으로 들어가자마자 일은 벌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이래도 되나 싶다. 현재의 나는 함께 공부하는 과정생들에게는 그런 무모한 방법은 쓰지 않는다. 최소 논문을 2편이상 게재한 경력이 있는 박사과정생 이라면 공동연구까지는 고려한다. 그때를 아주 너그럽게 용인하여 생각해보아도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미시적으로 나의 관점으로만 생각해 보면 그 사건 때문에 나의 연구 역량이 빠르게 향상되는 장점도 있었다. 물론 아주 단편적으로 내 입장만 생각했을 때이다.
어떤 일이 냐면, 처음 랩실에 들어가서 대학원 석사 과정 1학기 입학 한지 한 달 밖에 안 된 나에게 프로젝트가 지 되었다. 지도 교수님께서 석 달 뒤 6월에 학회 발표를 가시는데 그것도 국제 학회인데 해당 학회의 기조 발표를 맡으셨으니 학회에서 전달 된 주제에 맞추어 논고를 작성 하라는 것이었다. 그 임무가 나에게 하달 된 이유는 딱 한가지였다. Lab실에 2007년 당시 문법까지 고려하여 영어로 원고가 작성 가능한 인원이 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논문이던 논설문이던 무엇이던간에 글을 써 본 것은 대학교 학부 시절 매학기 모든 과목에 주로 하게 되는 레포트 정도이다. 물론 그런 레포트를 작성 하는 데 있어서 성적은 좋았다. 그러나 이건 그 숮준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레포트 정도에 글을 쓰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나 해외 학술대회 또는 해외 컨퍼런스에서 기존 발표를 하는 논고를 석사과정 중인 초짜에게 쓰라니 청천벽력이었다.
물론 초안을 만들면 선배들과 지도 교수님이 분명히 검토하고 첨삭을 해주어서 점점 더 보충 및 보강 되는 논고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컨퍼런스의 기조 발표라 하여도 분명히 논문의 초안 정도는 되는 약식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논문을 전혀 배워 본적도 없는, 논문의 절차나 과정을 전혀 모르는 나에게 자료 조사를 하고, 그 자료를 근거 삼아 주장을 하고, 그렇게 해서 서로, 본론, 결론으로 나누어서 이 주제에 맞는 글을 써 봐라 라고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정말 난감 했다. 내가 하는 게 맞을까? 내가 해서 쓰여진 것이 정말 완벽한 최소한 문제가 없,는 약점이 최소화 된 글이 맞을까? 라는 의문이 정말 머릿속에서 글을 작성하는 동안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초안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자료 조사가 2주 정도 걸렸고 글을 쓰는데 2주가 걸렸다. 그래서 한 달 만에 초안을 가지고 박사과정 선배에게 확인을 받고, 또 그 위에 서열인 박사 졸업 선배에게 확인을 받고, 그 다음에 수정해서 정말 초안이라는 것을 가지고 5주 만에 교수님께 검토 받으러 올라갔다. 교수님께서는 나름 흡족해 하셨다.
근거가 미흡한 부분도 분명히 존재 하지만 그런 부분은 보충이 가능하고 전반적인 글쓰는 진행 절차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물론 여기까지 5주 만에 오는데 선배들의 조언과 첨삭 지도가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그 활동의 최대 수혜자는 결국 나였다. 당시에 거의 하루에 2시간 자고 점심 이후에 쪽잠 1시간 정도 자면서 21시간을 책상에 붙어 있었다. 그 프로젝트를 혼자 진행 하면서 주제에 맞추어 자료 조사를 하는 방법 자료 중에 의미있는 것들을 검증 하고, 주제에 맞는 최종 자료만 엄선하며, 최종선택된 자료를 가지고 나의 논지를 만들어 가는 모든 절차를 7주정도의 시간 동안 스스로 훈련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방법을 '도제식'이라하여 아직까지 전통적인 방법으로 규정하고 진행하고 있는 대학원의 상주 형태의 Lab 들이 많다. 특히나 지도교수의 연구실에 상주하며 연구하는 과정생들은. 특히나 더 이런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여 연구 활동을 할 것이다.
이 방법이 지금 얼핏 듣기에는 매우 무모하고 매우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 과정 동안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연구에 대한 기초적 훈련이 이루어진다. 지금 돌이켜 보면 대학원에 입학 하자마자 상주생이 되어서 지도 교수님 밑에서 지도 교수님의 해외 발표 기조 논고를 엉겁결에 만들던 7주 간의 경험이 매우 크게 훈련의 성과를 발휘 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반드시 이렇게만 해야 인문 계열의 응용 사회과학 연구자가 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고 논문을 써가면서 여러 실패나 과정을 겪으면서 훈련하는 것이 사회 과학자로써 유용한 논문을 쓰는데 매우 중요한 과정의여러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며, 연구자 개인에게는 효과가 꽤나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만큼 괴로운 방법이기도 하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없이는 그리고 주변 선배들의 도움 없이는 연구물을 완성하기 정말 어렵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관련 자료에 대한 엄청난 공부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선행 연구 공부도 간접 경험의 한 영역으로 보아야 한다.
즉, 연구실에 앉아서 컴퓨터 앞에서 책상을 친구삼아 의자와 접착되어 앉아 있는 시간 만큼 분명히 그 시간 동안 알게 된 지식과 정보 와 여러 가지 이론들은 나만의 것이 될 수 있고 그렇게 훈련을 통해서 나만의 학풍도 결국에 미래에는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논문을 잘 쓰고 싶다면, 정말 그렇다면, 아무리 직업을 가지고 어렵게 힘들게 대학원 다니고 있다고 하여도 그 시간을 어떻게든 쪼개서 관련 공부를 엄청나게 해야 한다. 기본은 이론을 완벽하게 이해 할 때까지 지속하는 공부의 양이 우선이고 다음은 그걸 스스로 구조화하는 수십번 반복된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연구실에서 보낸 시간은 그 자체로 학문적 자산이 된다. 결과적으로, 내가 경험했던 힘들고도 값진 과정은 연구자로서의 나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