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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D PoL Dec 18. 2024

자랑스러움에도 이 부끄러움과 두려움이란...

나의 직업은 '박사'다.


박사 과정을 졸업한 지 벌써 14년째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도 16년이다. 하지만 아직 전임 교수라는 자리를 얻지 못했다. 16년 동안 강사 생활을 이어오며 100여 건에 달하는 논문과 공공기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나름대로 나의 영역을 굳건히 하고 있다.


하지만 항상 시간과 장소, 지위, 그리고 나의 역량 지속성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받으며,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연구자의 길 역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만큼 나만의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만 생각한다면 지금도 충분히 원하는 일을 하고 있고, 가장 잘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 45세의 나는 앞으로도 살아온 시간만큼 더 살아가야 할 날들이 남아 있다. 경제 상황은 어려워지고, 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점차 줄어들게 만든다. 대학원에 입학했던 18년 전, 나는 일반적인 직업 대신 공부를 선택하며 지식의 한계에 도전하고자 했다. 그리고 16년 전 박사 과정을 선택한 나는 이제 나의 직업을 ‘박사’라고 부른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 ~씨' 나 ' ~님' 이 아닌 ' ~~박사님' 이라는 호칭은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한다. 이는 나의 지식 수준과 전문 역량을 인정해주는 일종의 메달과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만능주의와 신계급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경제적 수준에 따른 호칭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학부부터 군 복무 시절을 지나 26년 이상 같은 자리에서 하나의 학문만을 탐구해온 나에게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더 서글픈 것은 나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지위가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이들이 나를 수단으로 이용할 때 잠시나마 미미한 빛을 발한다는 점이다.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과연 일차적 목표인 '교수'라는 직업이 나를 행복하게 할까? 사회적, 경제적으로 인정받거나 안정적인 직업이 나를 완성시켜 줄까? 아니면 나 스스로가 규정하는 가치, 그 높은 곳에 올라 탐구를 거듭하며 나의 자아만이 만족하면 끝나는 길일까?


연구와 강의, 글과 말. 나의 정체성은 분명하지만 이곳에 나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것이 두꺼운 안경 너머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며 자료에 파묻히고, 근거에 집착하며 논리를 만들어내는 존중받아 마땅한 '바닥 지식인'들이 대학을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부한다는 것, 특히 인문사회계열을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말하고자 한다. '이공계 추락'이라는 공포를 떠들어대는 미디어의 시끄러운 목소리보다 훨씬 더 깊고 본질적인 문제를 인문사회계열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4.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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