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러 가서 받고 오는 이벤트
흔히 말하는 자원봉사라는 명목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하는 노인 시설이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친구와 함께 조그마한 음악 콘서트를 열어 그곳 입주자들에게 익숙한 옛날 노래들로 프로그램을 꾸민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고아원이나 양로원 방문은 고사하고 수재의연금이나 그 흔한 구세군 냄비에도 돈을 넣어본 기억이 거의 없는 내가 처음 이곳 시설을 방문했을 때는 많이 떨리고 어색했다. 아무리 음악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80대 90대의 이곳 백인 노인들의 정서를 자극할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그저 노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마음가짐으로 그들을 대하기도 뭔가 많이 어색했다. 처음 몇 번의 방문 때에는 그저 내가 생각하는 추억의 팝송을 몇 곡 준비해 한 시간 동안 열심히 부르고 끝내는 것이 전부였다. 떨리고 어색한 기분이 앞서 노인분들의 얼굴 표정이나 반응 같은 것은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공연이 끝나고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고 있으면 오히려 노인분들이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서양인들 특유의 친근감은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어 보였다. 자기네 노래를 불러준 동양인이 신기하기도 한 모양이고 개중에는 우리 식당에도 관심을 보이며 꼭 한번 먹으러 가고 싶다며 주소를 묻는 분들도 계셨다.
공연이 반복되고 이런저런 노래들을 준비하면서 이분들의 반응이 좋은 곡들이 선별되기 시작했다. 반응이 즉각적으로 오는 노래 중에는 그분들이 어렸을 때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흘러나왔을 법 한 아주 오래된 동요나 군가도 섞여 있었다. 난 덕분에 1920년대 30년대 노래를 유튜브를 통해 찾기 시작했고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들어 보지도 못했을 노래들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 정말 새로운 경험으로 옛날 노래는 촌스럽다는 선입견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부터 거의 100년 전에 이곳에서 불리던 노래를 편곡하고 다듬어서 그분들에게 선물을 한다. 한 시간 남짓한 공연 시간의 반 정도는 내가 옛날부터 좋아했고 연주해보고 싶었던 곡으로 하고 나머지 반은 그분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곡들로 채워진다. 불편한 몸이지만 손을 움직여 율동을 하거나 어떨 때는 추억에 젖어 눈물을 적시 우는 광경을 목격한다. 공연이 끝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면서 그분들은 일일이 내게 다가와 손을 잡고 감사를 표한다. 난 이 순간 그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보람을 느끼며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이 행사도 이제는 거의 2년째 계속하고 있다. 이제는 그분들도 나를 알아보고 나 역시 그분들의 이름은 물론 각자의 성향까지도 파악하게 되었다. 그중에는 불행히도 유명을 달리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새롭게 시설에 들어오는 분들도 계시다. 지난달에 우리 노래에 맞추어 율동까지 하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거나,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항상 내 손을 꼭 잡아주시던 할아버지가 어느새 치매병동으로 옮겨지거나 하는 아쉬운 일도 흔히 발생한다. 젊은 시절 교향악단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한 할아버지는 이제는 거동하기도 힘들어 당신의 방에 모셔둔 첼로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처지이지만 우리가 연주할 때면 지긋이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며 감상한다. 2차 대전이 끝나며 유럽에서 캐나다로 도망쳐 나와 어렵게 살아온 파란만장한 삶을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시설이 위치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가정의 로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오던 분이 자신이 이제 파킨슨병에 걸려 시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신세가 된 경우도 보았다.
흔히 자원봉사라 함은 나의 시간과 기력을 희생해서 남을 돕는 일이라지만 나의 경우는 다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이곳 노인분들과의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나간다. 우리 노래를 듣고 흥겨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원봉사의 보람은 차고도 남는다. 또한 난 매번 그곳을 방문하며 삶에 대한 생각과 또한 바로 그 곁에 있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된다. 후회 없이 멋지게 사는 삶과 아름답게 죽는 것에 대한 귀중한 사색을 경험한다. 지금 현재 내가 누리는 이 소중한 시간을 단 한순간도 헛되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단순하면서도 너무나도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봉사를 하러 가서 봉사를 받고 오는 이 좋은 거래를 언제까지고 계속해 나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