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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FRAU Jun 29. 2021

비 오던 날, 그뤼에르

여행일기(스위스)

(표지 사진 : Chalet de Gruyères, Gruyères, Suisse / Photo by. @JOFRAU)


1

3년 전 스위스에 처음 여행을 와서 잊을 수 없던 음식이 있다. Fondue(퐁듀).

맛이 있어서 잊을 수 없었느냐,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보다는 내가 생각했던 맛이 아니어서 잊을 수 없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내가 생각했던 퐁듀는 고소한 치즈향과 왠지 모르게 쫀득할 것만 같은 식감과 말하기도 입 아픈, 보기에도 좋은 고기와 여러 신선한 야채들을 고민 없이 치즈에 푹 찍어 먹는 그런 퐁듀였다.


‘짜다…’

나의 첫 번째 퐁듀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먹으면서 생각했다. 술을 잘 못하는 나는 와인을 추천해준다는 직원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하며 물을 택했는데 왜 와인을 권했는지 알 것 같다 라는 생각. 미소를 머금고 입에 맞는지, 맛있는지 물어보는 그 친절한 직원에게 짜다 그러면 계속 미소를 지으실까 하는 생각. 누가 보기에도 나는 진짜 퐁듀를 처음 먹어보는 관광객임에 틀림없었다.


2

Gruyères : 그뤼에르


여름휴가를 맞아 남편과 나는 고대하던 퐁듀를 먹으러 갔다. 우리가 처음 같이 퐁듀 먹었을 때는 사귀는 사이였는데 이제 부부다 하는 놀라운 이야기를 하며 여행 리스트에 적어두었던 그뤼에르로 향했다.


그뤼에르는 치즈로 유명한 곳인 만큼 그곳에 놀러 갈 일이 있으면 꼭 치즈 공장도 가보고 퐁듀도 먹어봐야지 했는데 역시 그 명성답게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주차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으니까. 우리는 아쉽게도 치즈공장은 가지 못했다. 조금 슬픈 이야기지만 예전 같았다면 무리 없이 구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좋지 않으니 모든 실내 관광지에 인원수 제한이 생겼고, 또한 예약자만 받는 곳이 많아져서 어쩔 수 없었다. 비도 오는데 밖으로 길에 늘어선 줄을 보고 있자니 일단 따뜻한 곳에 들어가서 배를 채우자 하는 마음이 커졌다. 3년 전 관광객이었다면 줄을 섰을 텐데 지금은 조금 달라짐을 느꼈다. 치즈공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손에 들린 시식용 치즈가 조금 부러웠지만 퐁듀를 먹기 위해 우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미리 확인해두었던 퐁듀 레스토랑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스위스 전통 건축물인 샬레의 모습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 들어갔는데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여기도 설마 무조건 예약인가, 알아볼 때 그런 말은 없었는데’ 하는 걱정스러운 맘이 들었는데 곧 직원이 몇 명인지 물었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쓰고 밖에서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건너편에 기념품 가게가 있어서 들어가서 구경을 하다가 호출을 받고 들어갔다. 샬레 안은 짭조름한 치즈 냄새로 가득했다. 8월이지만 비가 와서 조금 쌀쌀해진 날씨 탓도 있었고, 그로 인해 여름 치고는 조금 두터운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고, 스위스 샬레의 모습과 식탁마다 놓인 빨간 퐁듀 팟까지. 그 모습들 덕분에 괜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꼼꼼히 보고 미리 알아봤던 메뉴를 시켰다. 곧 퐁듀가 나왔고 우리는 정신없이 먹었다.


‘맛있다!’

나의 두 번째 퐁듀는 그러했다.


3

고소함과 짠맛이 어우러진 치즈에 감자, 살라미, 빵 등을 푹 찍어 먹으니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퐁듀는 양이 꽤 많다. 물론 주문할 때 인원수에 따라 적정량이 나오는 거지만, 개인적으로 양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인이라 현지인만큼 잘 못 먹는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정말 말 그대로 배가 터질 때까지 먹었는데도 조금 남았다. 아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다시 포크를 들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여기 디저트는 먹어야 해.’  하는 인간의 반복된 욕심이 담긴 마음으로 그뤼에르 더블크림과 머랭을 주문했다.


Meringue avec crème double de la Gruyères, Chalet de Gruyères / Photo by. @JOFRAU


‘느끼하다…’

나의 첫 번째 머랭은 그렇게 한 번 더 나에게 추억을 안겨줬다. 처음 퐁듀를 먹었을 때처럼.


여름에 비가 올 때면 오늘이 생각날 것 같다. 여름에 비 왔을 때 그래서 좀 쌀쌀했을 때 그뤼에르에 가서 퐁듀 맛있게 먹었다고, 근데 머랭은 아무래도 한 번 더 먹어봐야 할 것 같다고.



2020.08. 스위스, 그뤼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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