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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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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FRAU Jun 26. 2021

무적이 되고 싶었던 동전 부자

여행일기(네덜란드)

(표지 사진 : Delft, Netherlands / Photo by. @JOFRAU)


1

아침에 숙소에서 조식을 하고 델프트를 구경하러 나섰다. 오전의 델프트는 어제 처음 도착하자마자 느낀 감흥에 비해 작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있는 다리는 너무 예뻤다. 그 다리 사이로 보트가 지나가는데 거기에 타고 있는 분들은 뭐지. 너무 신기했다. 아, 여전히 감흥이 있었던 걸로.


나는 씩씩하게* 혼자 광장까지 잘 찾아갔고, 신교회(Nieuwe Church)와 시청(Stadhuis Delft)의 모습에 또 한 번 감탄하며, 델프트 유명 식기인 델프트 식기.. 를 구경했다.

*숙소에서 5-10분 거리지만, 나는 No Service라고 뜨는 무용지물 폰을 가지고 있는 길치이기 때문에.


선물할 신혼부부 언니 오빠가 있어서 뭐 하나 사고 싶은데 맘에 드는 게 없어서 일단 보류했다. 유심을 구입하고 교통카드를 구입하여 무적**이 되고 난 다음에 Royal Delft에 가서 직접 봐야겠다.

**무적 = 핸드폰 유심칩 + 교통카드 구입 + 교통카드 충전


광장에 가면 여러 상점들이 밀집해 있어서 다행히 맵이 필요가 없었다. 그냥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만큼 둘러보면 그만이었다.


2

어제 갔던 카페 coffeecompany에 또 가서 flat white를 마셨다. 오늘도 진짜 사람이 많았다. 핫플이 맞나 보다. 아니면, 와이파이가 짱짱해서? 젊은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 방학인가? 과제 중인가? 이 시간에? 공강인가? 아니면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취준생? 아니면 직장인?

여행 오면 난 왜 이런 게 궁금해지는 걸까. 혼자라 조금 심심한 걸까. 아니면 나는 혼자 여행하는 거 생각보다 못하는 걸까, 잘하는 걸까.


3

드디어 유심을 구입했다. 무적이 되기까지 50%. 친절한 직원분 덕분에 나는 여행기분에 더욱 취하게 되었다. 작은 친절하나 가 이렇게 내 하루를 행복하게 채우다니. 그 기분 그대로 곧장 델프트 역으로 가서 교통카드를 구입했다. 무적이 되기까지 80%. 역, 슈퍼마켓,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는 블로그를 많이 봤는데 눈에 띄는 곳이 역밖에 없어서 숙소와 가까운 델프트 역으로 갔다.


‘교통카드를 충전하면 나는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무적이 된다. 야호.’


4

교통카드는 동전으로 충전할 수 있었다. 지갑에 20유로 지폐밖에 없어서 동전교환기에 넣고 기다리는데, 생각했던 1유로가 아닌 50센트짜리로 교환되었다. 동전 40개. ‘너무 많은데...’ 하는 생각과 동시에 교환된 동전이 기차역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생각보다 너무 컸다. 갑자기 비 엄청 내리는 소리. 나는 그 소리에 너무 놀라서 떨어진 동전을 정신없이 담다가 결국 다시 한번 더 쏟았다. 동전은 하나도 남김없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나는 당황해서 동전을 담으려고 열어두었던 지갑마저 떨어뜨렸고, 그 결과 지갑에 있던 동전도 모두 바닥으로 쏟아졌다.


‘아무도 건들지 마세요.. 제발 모른 척 지나가 주세요.. 그리고 제 동전입니다..!’


울상을 지으며 정신없이 동전을 줍고 있던 그때, 지나가던 한 할아버지께서 도와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땅에 떨어진 동전을 같이 주워주셨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너무 감사해서 "Thank you, Thank you very much!"만 되풀이했다.


나는 할아버지께 20유로를 충전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충전을 하는데 동전 40개를 다 넣지도 못한 채 기계가 동전을 더 이상 안 받았다. 18유로를 먹었다. 하필 18유로를. 


할아버지께서는 다시 기계를 확인하셨고, 다행히 기계는 내 18유로를 고스란히 뱉어냈다. 옆에 할아버지께서 안 계셨다면 식은땀나고 엄청 당황했을 텐데 정말 다행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일단 10유로만 충전하자고, 코인을 너무 늦게 넣거나 많이 넣으면 오류가 생기는 거 같다고 하셨고 그래서 일단 10유로만 충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교통카드 충전에 성공했다. 할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의 첫 네덜란드 여행이 비극적인 동전 사건으로 기억되었을 텐데 할아버지 덕분에 감동적인 동전 에피소드로 기억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충전을 무사히 마치고도 할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더 도와줄 것이 있는지 물어보셨고, 놀랐겠다, 괜찮다, 여행 즐겁게 하라고 해주시며 내 어깨를 토닥여주셨다. 정말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유아쏘 카인드 포미. 땡큐 베리 머치.


이제 무적 100%


2018.10. 네덜란드, 델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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