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한 밤

by 조각 모음

본가에 내려온 날입니다.


서울에서 커피 한잔 하는 여유를 누리느라 9시가 넘는 ktx를 타야만 했습니다. 결국 집에 도착하니 부모님은 모두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조용한 자취방에 들어온 듯 혼자 조용히 짐을 풀었습니다. 수압이 강한 물로 평소보다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이제 무엇을 하다가 자면 될까?'라는 생각을 하며 텅 빈 마루를 서성이다가 소파에 눕듯 앉았습니다. 평소에는 눈길조차 잘 주지 않는 소파인데, 본가에 온 걸 실감 나게 해 주는 데는 소파만 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습관처럼 여유롭게 sns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안방문이 열리더니 어머니가 나오셨습니다.

항상 여기 있었다는 듯 "어머니 안녕~"이라고 중저음으로 인사를 하는 절 보고 "어? 언제 왔노? 몇 신데?"라고 하셨습니다.


"12시 넘었지, 막 씻고 빈둥거리는 중이다. 왜 일어났어요?"

"물 한자 마시러 일어났지. 배는 안고프나?"

"안고프다"

"고프면 꺼내 먹고 자라"

"살찐다, 일단 잘 자고 내일 봐요"

"그래 잘 자라"


사실 배가 고팠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를 열었고, 삼겹살이 있는 걸 확인했었습니다. 굽기 귀찮음에 '이 시간에 무슨 삼겹살이야'라는 정당성이 더해져 배고픔을 외면하는 중이었습니다. "정당한 게으름"은 정말 강력한 법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어 배고파요."라고 대답하면, 누우면 바로 잠들 것 같은 어머니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프라이팬에 불을 올릴게 뻔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면 충분했을 테고요.

그래서 그냥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습니다. 많이 자는 게 보약이잖아요.


철없는 저는 딱 요만큼 컸나 봅니다.


(호칭은 엄마 아빠가 아닌 어머니 아버지라고 하면서, 말할 때는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는 집입니다.)

(맞춤법 검사는 사투리도 잡는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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