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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감에 관하여

이제는 안정감을 가져도 되는 삶을 살고 있어. 고생했어.

#안정감에 관하여


아픈 것을 잊을만큼 좋아하는 것을 해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내가 아픈 것을 잊을만큼 좋아하는 것이 있었나?


문득 생각해본다.

대체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지?


한 때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에 대해서,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서 오랜 기간 해오면서


좋아했던 것들이 일이 되고,

일이 되면서 부담이 되었던 상황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것을 잊을만큼 좋아하는 것들이 있나?

좋아하는 것이라면 대체 어떤 것이지?


사람들한테 당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참 많이 물어봐왔다.

대답은 다양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대답은 맛집 가기와 여행 가기였다.

그 외에도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이 넷플릭스보기, 유튜브보기, 영화보기, 책 읽기 등이었다.


나는 나를 잊을만큼 좋아하는게 있었나?

내가 아픈 것도 잊을만큼 몰두할만한 것이 있었나?


그나마 있었다면 취미생활로 하는 댄스는 정말 재미있어했다.

월화수목금토일 주 7일 중에서 주 7일을 가도 질리지 않았다.


보통 엄청 모든 것들을 빠르게 질려하는 스타일이었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그랬다.


그런데 댄스는 놀랍게도 질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쉽지 않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무리 해도 쉽지 않아서 항상 재미있었다.

그리고 2주마다 1번씩 노래가 바뀌니까 질릴 틈이 없었다.


댄스라는 운동의 특성상

변화가 많았고, 어느 정도 목표치에 대한 어려움이 늘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운동을 주 7일을 해도 매일 새로웠다.

2주마다 새로운 곡이었고, 매일 새로운 동작이었고, 난이도가 있어서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직업이든 취미든 나는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찾아야할 것 같다.

매일 새롭고, 난이도가 어느 정도 있어서 쉽다고 여기지 않는 일들.


나는 어떤 것에 익숙해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안정적인 것처럼 느껴지면 나는 그것을 항상 떠났다.


거의 모든 일에 그렇게 대해왔다.

사실 나는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살면서 안정적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고,

안정감이라는 감정이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감이라는 감정.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에 대해서 이제 좀 익숙해질법하고 안정감이 생기려고 하면 나는 그것을 견디지 못 했다.


초등학교를 5군데를 다녔다. 중학교도 2군데를 다녔다.

끊임없이 전학을 다녔다.


친구들이랑도 친해질 법하면 이사를 갔다.

전학간 학교에서 안정감이 생겨서 반장이 될 법하면 이사를 갔다.


한 번은 대학교 때 만났던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너는 항상 불안해야 안정감을 느끼니? 너는 그냥 감정의 동요 없이 고요하면 이상하니?"


프로이트의 이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프로이트를 싫어했다.

프로이트라는 이름을 들이밀며 나에게 '과거의 너가 이렇기 때문에 현재의 너가 이래.' 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사실 정말 직면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긴 하지만,

이제와서 솔직하게 직면해보자면.


솔직히 나는 안정감이 익숙하지 않다.

아주 나랑 친하지 않은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붕뜨는 것 같은 삶을 살아왔다.

쿠팡MD로서도 잘 하고 있었으면서도 전배신청을 했고, 쿠팡 로컬운영 기획자로 안정적이었는데 퇴사를 했었다.


취업컨설턴트로서는 네이버 메인에 자주 오르기도 하고, 한국직업방송 뿐만 아니라 공중파와 글로벌 방송까지 나왔었지만 오랜 기간 같은 것을 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항상 전학을 가던 패턴이 내 안에 뿌리깊게 박혀있었던 것 같다.

아예 유전자에 새겨졌던 것 같다.


그래서 뭔가 지내다가 이사가거나, 단절되어야 그게 익숙했던 거다.

아 진짜 직면하고 싶지 않았지만 솔직히 팩트다.


그래도 오늘은 이걸 발견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고 축복이라고 여기고 싶다.

이제 나는 수많은 전학과 이사를 거치고, 열심히 해서 나만의 공간들을 내 힘으로 만들어왔다.


이제 더 이상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 생존에도 아둥바둥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그냥 뿌리를 내리고 살아도 된다. 그 누구도 나에게 위협적인 사람도 없다.


한 군데에서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해도 된다.

안정적으로 살아도 된다. 안정감을 친구처럼 여겨도 된다. 안정감에 익숙해져도 된다.


바꾸고 변하고 이사하고 새롭고 이것이 내 안정감이 되지 않아도 된다.

바꾸지 않고, 변하지 않고, 이사가거나 옮겨다니지 않고, 새롭지 않고 꾸준해도 된다.


이제는 그게 내 안정감이 되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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