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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글을 쓰자

매일 글쓰는 것은 가장 조규림다움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파워워킹하고 있는 나)



 다시 글을 써야겠다. 나를 가장 성장시킨 것도 결국엔 글쓰기였다. 글을 쓰면 사유하게 되고, 깊게 생각하게 된다. 글을 쓰지 않으면 길을 잃는 느낌이 든다.



 최근 천그루숲 출판사 MT에서 저자분들과 딥토크를 했다. 나왔던 질문 주제 중 하나가 이거였다. "살면서 했던 많은 선택들 중에서 내가 가장 잘 한 선택이 무엇인가요?"



 내가 답을 시작했다. "사실 살면서 했던 많은 선택들 중 잘 한 선택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어떤 것을 골라야될지 고민이 되지만..." 이라고 답변을 시작했다. 스스로도 놀라웠다.



 살면서 했던 선택 중에서 잘 한 선택이 너무나 많다고 답하는 내가 스스로도 의아했다. 사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나를 휘몰아치면서 살아왔었다. 자기엄격, 자기비난, 자기비하의 아이콘이랄까?



 내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했고, 완벽주의를 좇은 적이 많았으며, 내가 생각한 것만큼 따라오지 못 하는 나를 보면 자기비난을 했다. 스스로에게 뭐라고 뭐라고 욕을 하기도 일쑤였다.



 뭔가 못 했을 때는 "이것도 못 하니 ㅄ아;" 라면서 나를 다그쳤다. 그래서 나는 많은 퍼포먼스들을 냈었지만, 몸건강과 마음건강은 으스러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을 때, 정신과 상담을 갔었고 그 이후 심리학 대학원까지 다니게 되었다. 자기엄격이나 자기비난이 아니라 자기친절의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기를..." 하면서 토닥토닥거렸다. 이 말을 하는데 왜 눈물이 났을까? 나는 왜 나를 그토록 오랜 기간 인정하지 못 했을까?



 스스로 존재의 당위성에 대해서 인정하지 못 했던 것 같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민폐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괜히 태어나서 여러 사람 참 힘들게 한다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의외로 다크했고, 뒷동산에 가서 혼자 울었던 적이 참 많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렇게 항상 혼자였다. 심리학을 배우면서, 그 때 그 자리에 가서 내 옆에 있어주었었다.



 지금의 내가 그 때 어린 시절의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참 위안이 되었었다. 그렇게 내면아이에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 했던 나는, 이제 내면어른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면의 벗이 되어주었다.



 인스타그램에 글을 연재하지 않았던, 몇 달 동안 나는 그렇게 참 많이 성장하고 있었다. 트라우마 치유를 하고자 노력을 했고, 내가 가진 스몰트라우마부터 라지트라우마까지 어루만져주었다.



 그리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씩 더 어루만져줄 수 있었다. 사실 이 몇 달간은 나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심리학 대학원을 간 것은 내가 살고 싶어서 간 것이었으나, 막상 가고나니까 나도 살고 다른 사람들도 살릴 수 있었다. 의외였다. 분명 내가 살고 싶어서 간 것인데, 내 마음의 성숙됨으로 다른 사람들까지 치유로 이끌어 줄 수 있다니...



 그토록 내가 되길 바랐던 상처입은 치유자, the wounded healer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이제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심리학은 나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퍼스널브랜딩을 도와주는 사람이고, 강연을 기획하는 사람이고, 콘텐츠나 온라인클래스 기획 등을 돕는 사람인데 그런 내가 심리학까지 장착한다면 사람들의 더 깊은 내면을 알아주고 함께 멘탈라이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안정 애착을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내가 늘 예전부터 이야기했었던 것이 학생들을 안아주는 선생님이 되자였다. 어쩌면 나도 내 스스로를 안아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은 뭐 가끔 나비포옹을 하면서 스스로를 안아주고 있다.



 내가 바로 서면 설 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내 몸과 맘을 바로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것, 더 옳은 것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글을 써보자. 다시 할 수 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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