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누나가 다른 점이에요"
한계를 짓지 않는 연습을 하자.
"그게 누나가 다른 점이에요"
오랜만에 미국 유학갔을 때의 학교 후배를 만났다. 우리는 한국에서 미국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오랜만에 나누었다. 우리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우리가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카페테리아, 함께 밥을 먹으러 갔던 곳. 우리가 아는 외국인 친구에 대한 이야기. 우리 학교에서 유망했던 전공. 주로 항공쪽이었다. 그는 ATC Air Traffic Control 일을 하고 싶어했고, 나는 승무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학생활 이후 7년만에 만난 우리는 정말 달라져있었다. 그는 어엿한 사업가가 되었고, 나 역시 사업을 하고 있었다. 내가 누나라서 조금 더 빨리 시작을 했던 상황이었다. 사실 우리 둘다 사업을 하게될 줄은 유학시절엔 정말 몰랐다.
우리는 그저 둘 다 학생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나가 돗자리를 깔고 별을 보러 갔으며, 떨어지는 별똥별에 신기해하던 대학생들이었으니까. 우리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가서, 처음 보는 동물인 버팔로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높게 솟구치는 화산의 온천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청년들이었으니까. 더구나 그 친구는 비즈니스 과목에서는 종종 Fail에 가까울만큼 낮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우리는 당연히 항공산업에 종사할 줄 알았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에 갈 줄 알았고, 그는 ATC 나는 승무원이 될 줄 알았다. 그랬던 우리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다. 교육사업을 하는 그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내가 평소에 즐겨 사용하는 영어공부 어플리케이션인 스피킹 맥스를 보여주었다.
스피킹 맥스에서는 외국에 직접 가서, 지나가는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는 내용으로 영어공부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황이 꾸밈없이 자연스럽다. 하와이편에서 한 원어민 남자가 나왔는데, 그는 자신의 와이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She is so smart, hard-working, and brave."
(“그녀는 정말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고, 용감해요.”)
“She will eat anything. She will do anything."
(“그녀는 다 먹을 수 있구요. 그녀는 다 할 수 있어요”)
“When we go to surfing, I said we cannot today because of the weater, but she said it's fine"
("우리가 오늘 서핑을 하러 갈 때, 저는 날씨 때문에 오늘 못 한다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괜찮다고 말했어요“)
이런 파트를 함께 보았다. 그는 내게 말했다.
“우리가 만난 지 7년만인데,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
“누나는 아까 그 스피킹 맥스에 나온 사람의 와이프처럼, smart하고 hard working하고 brave해요.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고, 용감해요”
나는 그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실 나는 큰 성과를 이룬 멋진 남자친구를 둔 탓에(?), 종종 내 존재는 그저 그의 여자친구로 불려지곤 했었다. 빛과 그림자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성장하려고 애쓰며, 많은 강연자님들과 작가님들, 강사님들을 만나고 살아왔다. 이미 한 분야에서 대가를 이룬 분들과 많이 만나왔다. 베스트셀러 작가님들도 많이 계셨다. 나는 그 사이에서, 배움을 많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 내 존재가 참 작아보였다. 타인과의 비교를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러지 말라고 조언 아닌 조언 나부랭이를 해주곤 한다.
하지만 정작 나도 내가 만나는 어떤 세계 안에서, 끊임없이 비교하고 나 자신을 힘들게 했었던 것이다. 남자친구를 좇아가기 위해서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황새가 뱁새를 따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했던가. 정말 그만큼의 노력이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케파를 감당해나가면서까지 나는 그를 따라잡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알을 깨고, 성장통을 겪으면서 성장을 했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또 조언나부랭이를 하고 있었다. 같이 가자고, 같이 성장하자고. 나름대로의 성장을 해서 달라진 삶에 만족을 하고, 행복도가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나만 누리고 싶지 않았던 거다. 함께 그 경험을 공유하고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콘텐츠를 만들든, 강연을 하든, 사업을 하든 그런 건 쉽지가 않은 일이라고. 너니까 하는 거라고. 그럼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그들이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야기를 한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나름의 상처를 받는 순간도 있었다. 내가 만약 그들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면, 나는 차마 미안해서 말도 꺼내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런 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나는 꼭 말하고 싶다. 한계를 짓지 말라고. 왜냐면 나도 예전에 한계를 지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의 한계를 지으며, 나도 어떻게든 조직에 있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결국 알을 깨고 가까스로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도 할 수 있다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 말을 믿지 않아주는 것 같아서,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서... 현타가 오기도 했다. 내가 그저 노오력하면 할 수 있다고, 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일까? 단지 감정의 뽕을 심어주는 꼰대가 된 걸까?
이런 상황에 대해,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누나가 다른 점이에요!” 갑자기 나는 머리를 띵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를 찾으려고 해도 보이지 않았는데, 타인의 말 속에서 나를 비로소 찾을 수 있었다.
그랬다. 정말 그래왔다. 한계가 보여도, 한계를 짓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던 거다. 6개월에 총 합쳐서 94만원을 벌며 개고생했던 것도 이겨냈다. 이직을 10번 하면서도 이겨냈다. 쉬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다. 그런데 그냥 계속 했다. 뭐라도 했다. 주말에는 개발자, 기획자와 함께 모여서 제 2의 선데이토즈를 만들겠다고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보자고 개발 스터디를 하기도 했다. 나를 알기 위해서 강점혁명도 해보고, DISC 검사도 해보고, 에니어그램도 해보고, 핵심감정 테스트도 해보고 무언갈 계속 해왔다.
사람들이 자기개발에 대해서 비하하고 비웃을 때, 묵묵히 그것을 해왔다. 회사가 끝난 평일 밤에도, 주말에도 쉬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숱한 후려치기를 당하면서도, 상처는 받을지 언정 멈추지 않았다. 영상편집에 대해서도 유튜브에서 싫어요를 받으면서도, 나의 수준낮은 편집에 대해서 우스움을 사면서까지도. 나는 그저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함에 집중하며, 허접하더라도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페이스북도, 브런치도, 블로그도, 유튜브도...
그게 내가 다른 점이었다. 나는 그것을 이제야 알았다. 일전에 몸값을 올리는 커리어관리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주제를 그렇게 잡아달라고 하여, 잡긴 했지만 막상 내가 어떻게 몸값을 올렸는지 기억이 안 났다. 울고 싶기도 했다.
실제로 시급을 최대 385배까지 올려봤다. 한계를 짓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역시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한계는 단순히 시급이나 돈 얘기만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튼 생각해보니 내가 시급을 왜, 어떻게 올렸는지 잘 모르겠는 거다. 근데 갑자기 그 주제로 강연을 해야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강연 전날 결국 오열을 했다. 책임감에 울었는지, 부담감에 울었는지 아직 모르겠다. 갑자기 게슈탈트 붕괴현상이 왔다. (일부 단어가 계속 맴도는 것)
몸값탈트 현상이 온 것이다. 갑자기 몸값이 뭐지?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 몸값을 올렸지? SNS빨 아닌가? 나는 그저 페북과 유튜브를 열심히 했을 뿐인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때 남자친구가 말했다. “아니야 규림아. 몸값은 네 노력값이야. 나는 너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 사람인 지 옆에서 다 봤잖아!” 라고 말했다. 순간 눈물이 터졌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때때로 이처럼 잘 알지 못 한다. 열심히 살아왔으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모른다.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이 달림에, 이 속도에 적응이 된 것이다.
나는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우리가 각자 어디에 위치해 있을 지는 그 누구도, 아무도 알지 못 한다. 인생은 길다. 한계를 짓지 않고 살아가자. 다만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지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자. 꿈을 오랫동안 그리는 사람은, 그 꿈에 닮아갈 수라도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될 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될 때, 내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때. 그래서 그냥 그 사람과 나는 다르다라고 생각하고 싶어지기도 할 때.
딱 그 순간들이다. 그 때, 한계를 짓지않는 연습을 하자.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크게 상관없지만 닮아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