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es review]
Slavoj Zizek: the Theory of Freedom - Lesson 02 <How to change the Past>
사람은 때때로 과거를 바라봅니다.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성장한 자신을 애틋하게 바라보기도 하죠. 그러다가 언젠가는 괴롭고 슬픈 과거로 인해 주저앉아 울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꼭 과거를 지우거나 바꾸고 싶어 지기 마련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지우고 싶은, 바꾸고 싶은 과거가 많아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아직도 과거를 바다로 흘려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거울을 통해 바라볼 때, 무수한 감정이 듭니다. 네, 말하고 싶지 않은 그런 감정들, 단어들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깨달았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나요? 선택지를 찢어버리면, 과거를 후회한다는 선택지를 찢어버린다면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벤자민 리벳의 실험을 보며 잠겼던 생각입니다.
지젝은 리벳의 실험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았습니다. 뇌에 의해 결정하는 행위가 이미 정해진 일이라지만, 이 이행을 거부할 수가 있다고 하네요. 그럴 때가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정말로 찰나의 충동을 가까스로 막은 경우가 그것이죠. 따라서 자유의 가장 기초적인 상태는 바로 SAY NO!라고 합니다.
지젝은 이어서 영화로 예를 들기 시작합니다. 바로 모두가 한 번쯤은 익히 들으셨을 셰익스피어의 <햄릿>입니다. 햄릿은 단순한 명작이 아니라고들 하죠. 그 깊이는 전설에 가깝고 그 수많은 변형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 위대한 작품임을 반증하고 있지요. 이를 보고 지젝은 미완성이 곧 생산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젝은 왜 영화를 예로 들었을까요? 저는 솔직히 말해서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작품을 각색하는 행위를 과거를 바꾸는 것과 동일시하는 것은 알겠어요. 과거는 잊히기 쉽지만, 때때로 견고합니다. 너무 견고해서 온 나라의 사람들의, 거의 모든 현대인들의 의식을 관통하기도 하지요. 대표적으로 국가의 헌법,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작품 등이 있지요. 헌법을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아요. 그만큼 시대의 명작이라 일컫는 작품들을 쉽게 각색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메멘토? 이 작품을 어떻게 Deassembling을 하며, 어떻게 Reassembling을 해야 할까요. 그래서 리메이크나 리부트와 같은 작품들은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어 보이죠. 그런데 이걸 왜 예로 들었을까요? 바로 지난 수업에서 배웠던 <규칙을 비트는 자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대중들의 의식을 관통하는 규칙을 각색할 자유 말입니다.
다시 내 마음속을 살펴보겠습니다. 저토록 견고한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내 마음을 짓누르는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뜻 아닐까요? 솔직히 여전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모르겠는데도 과거를 잊을 수 있다는, 지울 수 있다는, 바꿀 수 있다는 초점 잃은 희망의 냄새를 이따금씩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say no라... 결국 지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나를 부정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곧 자유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가 나의 현재를 부정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일까요, 그래서 현재를 부정하는 과거를 부정해야만 나의 현실이 되돌아올까요, 그렇다면 과거를 부정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불교적인 사고를 해보자면, 과거를 부정하는 방법을 바다로 떠나보내야 과거로부터 잊힌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반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잊히긴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는 게 문제라면 문제네요. 정말로 이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요. 지젝의 수업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강의 다시 보기: 위대한 수업 (e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