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커피에게 기대하는 것
지난 일요일 저녁, 국수로 대충 때우고 후식을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향한다. 무심히 문을 열고, 무심히 음료수 코너로 향한다. 한동안 유산균 음료만 찾던 나는 오랜만에 커피가 땡겨 커피 진열대를 훑어본다. 스페셜티, 스모키한 풍미, 탄자니아.... 탄자니아? 내가 알던 그 탄자니아인가? 맞았다. 제인 구달의 역사가 시작된 그 탄자니아가 맞았다. body에 정글이 떠오르는 식물과 동물이 그려져 있다.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사실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즐겨 마시지는 못한다. 카페인 부작용이 심하기 때문이다. 200mg 이상 마시면 그 날은 잠 다 잔 거다. 각설하고, 커피의 가격표를 본 순간 심쿵해버렸다. 1+1이었던 것이다. 속으로 '어머, 이건 사야 해!'를 외치며 두 병을 냉큼 집어 들고 반가운 물건을 만난 기분으로 카운터로 갔다. 계산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뚜껑을 따고 마시는 순간ㅡ
부족했다. 뭔가가 부족했다. 그게 무엇일까. body에 적혀있는 대로 바디감은 풍부했다. 풍미 또한 스모키 했다. 산도는 적고 쓴맛은 강했으며 단맛은 사실 나는지 안 나는지 잘 몰랐다. '단 맛이 부족한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스위티 한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 아, 고소한 맛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다. 예전에 구독해서 타 마시던 커피가 있었는데, 바디감은 적었지만 고소한 풍미는 강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뭔가 감정이 이상했다. 기대했던 고소함이 쓴 맛으로 대체되었다면, 무언가 '다름'을 느꼈어야 했다. 난 대체 왜 '부족함'을 느낀 걸까? 남아있는 커피를 벌컥벌컥 마셔본다. 한 입, 두 입, 세 입.... 후아. 목젖 너머로 커피를 실컷 넘긴 나는 이제야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잔향이 부족해.
그랬다. 잔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느껴보려고 해도 내가 원하던 잔향에 비해 풍미가, 테일이, 스테이가 모두 부족했다. 왜일까? 편의점 커피라서? 아니면 아이스커피라서? 이것도 일리가 있다. 한참 본가에서 내려마시던 그 커피는 핫 커피였으니까. 원래 따듯해야 잔향이 오래가는 건 맞으니까.
나는 왜 잔향을 원하는가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제각각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은 맛 때문이 아닐까. 난 왜 많고 많은 테이스팅 노트 중에 잔향을 원하는 걸까? 왜 길게, 오래, 더 많이 지속되는 것을 원할까. 뭐가 그렇게 부족하길래 지속되는 것을 좋아할까. 잠깐, 부족하다라... 뭐가 부족한 거지??... 알겠다. 이제야 내게 부족한 것이 뭔지 알 것 같다.
뭐랄까. 사람의 흔적, 온열감이 그리운 모양이다. 물론 거의 매일같이 직장을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지만, 지인들을 이따금씩 만나기도 하지만, 유의미하게 사람을 만났다고 느끼는 것은 역시 커피의 잔향을 맡을 때라고 느낀 모양이다. 평일 아침, 연구실에 출근하며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커피의 잔향과, 주말에 이따금씩 지인들을 만나며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의 잔향. 본가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며 과자를 강아지와 함께 나누며 내 몸과 마음을 데우던 그 잔향. 젠장, 별나라로 떠난 강아지가 또 그리워졌다.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잔향들. 언젠가는 커피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날이 나에게도 찾아올까?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어서 오늘도 난, 커피를 마신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리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