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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하 Sep 18. 2022

독서에 대한 신념이 부딪히는 현장을 보았다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


    오랜만에 친한 동생들과 번개를 가졌다. 백순대, 동생 하나가 맛있다고 주장하는 순대집을 갔다. 한참 늦게 식당에 도착해보니 배가 많이 고팠는지 이미 많이 먹고 있더라. 식탁을 보니 철판 위에 순대와 곱창과 야채가 한데 어우러져 탐스러운 그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개중에 야채가 가장 많아서 부담없이 먹기엔 더욱 좋았던 백순대집이었다. 이윽고 마지막으로 취준생이자 우리 중에 학벌은 가장 좋은 동생이 도착해서 인사를 나누었다. 순대를 먹기 위해 소주잔을 채우고, 소주를 마시기 위해 건배를 하는 과정을 끝낸 후, 릴레이가 이어지다가 취준생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


나 개발자 때려치고 기획자 하려고. 그래서 책을 많이 읽고 있어. 세 보니까 한달에 50권이나 읽었어.


근황을 자세히 물어보니 IT업계에서 기획자를 하려는 것이고, 최근 브런치를 하며 유튜브로는 북튜버를 준비중이라고 하는게 아닌가. 저번에 내가 브런치를 추천했을때는 일반 블로그랑 다름 없다더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처럼 좋은 글을 발견했나보다 싶었다.


이내 다른 동생이 자신의 독서에 대한 경험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독서 동아리에서 만날때 토론은 최대한 짧게, 술자리를 최대한 길게 가져.

이렇게 말하자 기획을 준비 중인 동생이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게 무슨 독서 동아리야, 술 마시려는 핑계로 만나는 거 아니야?

이 주장도 사실 맞는 주장이긴 하다. 독서에 대한 감상과 평론시간을 최소로 잡고 술자리를 길게 가진다는 것은.


뭐 그렇지, 대신에 우리가 책을 직접 사주니까 그걸로 된 거 아니야?

자기네가 책을 제대로 읽진 않더라도 책을 직접 사서 후원해주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심지어 특정 주차에서는 아무도 선정한 책을 읽지 않아서 평론을 할 수가 없던 일화도 전하는 것이 아닌가. 이 둘은 자리를 뜨고 빙수집을 가서도 설전을 계속 이어갔다.


책을 읽고 정보를 뽑아내야 제대로 된 독서생활이지, 안 그래?

술자리를 가지며 상대방과의 관계의 다양성이 늘어나며, 거기서 스토리가 나오는 게 일반적이지 않아?


서로의 신념이 강하게 부딪히는 자리였다. 신념이라 함은 고집을 부리는 것이 절대 아니라 생각한다. 자신의 주장 및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설득을 시키는 지가 신념의 강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누구에게 설득 당했냐고? 그렇게 물으신다면, 나는 둘 모두에게 설득당해 버렸다. 비유를 들자면 이렇다. 씨앗을 하나 심은 화분 A와 B 두개를 텃밭에 두는 것이다. 이 날 비가 내렸는데 놀랍게도 비가 A에만 쏟아지고, B에는 단 하나의 빗방울만이 떨어졌다고 가정 해보자. A와 B, 두 화분은 나에게 보여주는 스토리가 달라질 것이다. 넘치는 생장과 활력을 보여주는 A화분도, 단 하나의 빗방울로부터 악착같이 발아를 보여주는 B화분도, 내 눈에는 그저 사랑스러울 것이다. 


두 화분이 나에게 속삭여주는 이야기의 영역이 다를 뿐이다. A화분은 아주 화려하게 생장을 하며 나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이며, B화분은 끈질긴 생존력을 보여주며 나에게 끈질김에 대한 철학의 눈을 자극할 것이다. 정보의 인풋의 차이란 바로 이런 차이일 뿐이지, 수직적인 서열의 차이가 아니다. 공식은 있을지언정 정답은 없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인생에 정답이 있다면 인생의 문제 또한 전부 똑같아야 한다. 우리의 인생은 전부 똑같을 리가 없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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