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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해야 Johaeya Jun 19. 2023

입 밖으로 꺼내되 책임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

[들개와 노견] 1부 1화 _섬 출신 들개와 도시 출신 노견의 난리동행



          지난해 여름, 누런 강아지 한 마리가 회사에 나타났다. 생후 3개월가량 돼 보이는 놈은 여러 날 회사 정원에서 뛰어놀다가 야자수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사라졌다. 제주의 여느 시골집처럼 주인이 방목하여 키우던 개가 어느 날 새끼를 낳았을 테고, 그 줄줄이 새끼들 중 한 마리가 집과 회사를 오가며 짧은 유랑을 다니는 것 여겼다. 계절이 바뀌어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언제부터인가 놈은 보이지 않았다.






          그 후 반년이 지나고 세찬 눈발이 야자수 아래 잔디를 덮은 날, 정확히 전의 몸집의 두 배가 된 모습으로 놈은 다시 회사에 나타났다. 놈은 시간이 갈수록 자주 모습을 드러냈는데 나는 떠돌아다니는 놈을 가엾게 여긴 이곳의 누군가가 매일 밥을 주고 있는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던 날에 회사 내 카페 입구에 놈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본 운영사무실 팀장이 카페를 찾아갔다. 팀장은 운영에 방해가 되니 더 이상 개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말라고 카페 사장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당장 카페 영업에도 차질이 생길 지경이고, 내년 봄 재계약 불발에 대한 불안감까지 더해져 결국 카페 사장은 개에게 제공하던 음식을 끊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주무시는 개님



그럴수록 놈은 직원과 고객을 향해 열렬히 먹을 것을 구했다. 누군가는 놈에게 음식을 먹이고 와서 "왜 회사에서 개를 돌보지 않느냐, 어쩌다가 개가 저렇게 말랐냐"라고 직원을 타박했고, 또 누군가는 "사람을 공격해서 큰일 날 뻔했다. 당장 신고해서 개를 없애라"라고 소리쳤다. 코로나19 사태로(당시 기준) 투숙률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놈은 그러든가 말든가 텅 비다시피 한 건물 주차장에 드러누워 볕을 쬐거나 비를 맞으며 하루씩 살아내고 있었다.



'코로나가 진정되고 본격적인 여름철이 오면 회사에는 사람들로 넘친다, 놈에 대한 고객 항의 건수도 그에 비례하여 는다, 참다못한 운영사무실의 누군가가 유기견 신고를 한다, 동물보호센터로 잡혀간 놈은 보름 동안 찾아주는 이 하나 없이 공포에 떨다가 안락사로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 내가 예측 가능한 놈의 미래였다.






버튼 하나가 있다. 회사 직원은 마흔세 명. 그 하나의 버튼은 놈의 죽음과 직결해 있다. 버튼을 눌러 죄 없는 사형수를 처형대 아래로 떨어뜨린 직원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고, 반대로 버튼을 누르지 않은 나머지 직원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나를 대신한 한 사람이 제발 버튼을 눌러주기를 바라는 조용한 날들. 놈의 존재를 입 밖으로 꺼내되 책임에 대해서는 결코 거론하지 않는 상황에서 버튼을 누를 이가 나타날 리 없다. '입양이 보장된다면?' 하지만 다 자란 믹스견이 입양될 확률은 더더욱 희박하다...... 오만 가지 번뇌가 하루 종일 뇌 속을 헤집는다.



번뇌가 헤집는다






*[들개와 노견]은 총 20화로 매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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