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주차장에서 놈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제보다 야위었는지 다친 곳은 없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다. "파도야, 야자수야, 현무암아......" 아무렇게나 불러도 5초 안에 나타나 기어코 나를 짠하게 만들던 놈을 오늘은 "누렁아", 하고 부르니 또 제 이름인 양 뜀박질하며 나타난다. 그리고 놈은 꽤 긴 시간 가만히 서서 나를 본다. 순간 본능으로 충만한 눈빛이 너무 강렬해서 오직 ‘먹겠다’, ‘살겠다’,는 것 외에는 놈의 다른 뜻이 전해지지 않는다.
직원들이 알음알음 주는 먹이를 통해 놈이 생존을 이어가는 동안 나 역시 그 암묵적인 존재들 중 하나가 되어 갔다. 남은 저녁밥에 국물을 말아 찬과 섞어 주기도 하고, 간식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놈은 나날이 풀이 죽고 많이 지쳐 보였다.
‘배가 고프다는 것은 무엇인가. 목이 마르다는 것은? 지속이 안 되면 죽는 것이다. 죽을 수도 있는 존재가 살겠다고 밥을 달라고 한다. 내게 와서 자꾸만 나를 본다. 이 눈동자를 모른 척하는 것이 가능한가. 길개와 길고양이 배식 수칙에 지속 가능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내일 당장 이 회사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계약직 직원인 내가, 내 목숨조차 어찌 감당할지 모르는 내가, 다른 존재에게 지속적인 생존을 위한 수급을 책임질 수 있을까......’
놈이 내 앞에 보이는 날은 마음이 불편하고, 보이지 않는 날은 그런대로 편한, 책임과 무관심함이 매일 소용돌이쳤다.
놈은 어느새 회사 사람 전부가 아는 개가 되었다. 누렁이, 짱이, 황구, 더덕, 인마...... , 로 불리며 일 년 사이에 이름 갑부가 되었고, 환대와 멸시를 동시에 받고 있었다.
간절한 심정으로 놈의 이야기를 회사 사장에게 꺼냈다. 새끼 때부터 회사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개를 야박하게 내쳐서야 되겠냐, 고. 회사를 지켜주는 복일지도 모른다, 고. 무조건 안 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도리어 마스코트로 세워 회사에서 돌보자, 고. 나의 제안에 곧장 사장의 대답이 돌아왔다. "잡아먹을 거면 키워요."
'당신에게 개는 고기이군요. 다음 생애에 꼭 떠돌이 개로 태어나서 고기가 되세요', 하고 빌어 드렸다.
광합성 중이신 개님
퇴근길 차문 여는 소리를 듣고 놈이 내 차 앞으로 튀어나왔다. 이날따라 차 안에 준비된 음식이 없어서 가방 속에 있는 견과류를 바닥에 뿌려주었다.
다음 날 사료와 그릇을 준비해서 차에 실어 놓으며 ‘내 앞에 나타난 살아있는 무언가를 모른척하지 말자, 내가 살아있는 것을 대하는 태도대로 남도 나를 대한다. 그저, 놈이 내게 찾아온 순간에 내가 놈에게 해줄 수 있는 만큼만 하자’, 고 마음을 먹었다.
이상하게 울적한 아침. 놈을 위해 준비한 사료와 물을 3일 동안이나 트렁크에 그냥 싣고 다녔다. 막 출근한 과장이 출근길 회사 앞 도로에서 로드킬 당한 개 사체를 보았다고 했다. 색깔이나 크기가 놈인 것 같다고 했다.
그날 오후 회사 동료들은 모두 그 사체가 놈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차 안에 뜯지도 못한 사료와 물을 떠올렸다. 내내 회사에서 먹고 자고 했던 놈. 회사에서 놈을 기피하자 점점 먹을거리가 끊겼을 것이고, 건넛마을에서 음식을 구할 생각에 새벽도로를 건넜을 것이다.
‘내가 사료를 주었다면 도로를 건너지 않았겠지. 내가 조금만 적극적이었다면 허망하게 죽지 않았겠지' 놈의 처참한 죽음으로 생겨난 덧없는 마음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혹시,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식당에서 먹다 남은 저녁밥을 챙겼을 때 '살아있다 해도 넌 평생구걸을 해야하는구나. 그래서 아무도 누르지 않은 버튼을 스스로 누른 거니......', 엎어진 기분이 땅끝으로 태양을 누르고 하늘에 슬픔을 퍼뜨렸다.
버튼을 누른 자는 우리 모두,라고 생각했다. 4.3항쟁 기념일로 제주가 소란한 날에 황망히 떠난 놈을 모두가 잊어도 매해 이날이 올 때마다 나만은 개를 떠올리겠다고 다짐했다.
해가 지고, 환영을 보았다. 그날 밤 프런트 정면 유리창 앞에 놈이 나를 보고 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