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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해야 Johaeya Jun 21. 2023

나는 너를 신고할 것이다

[들개와 노견] 1부 3화 _섬 출신 들개와 도시 출신 노견의 난리동행



          놈의 장례식을 각자의 방식으로 치르는 동안 나는 '분명히 놈인', '어쩌면 놈일 수도 있는', '제발 놈이어야만 하는' 환영과 끈질기게 다퉜다. 어쩌면 삶을 계속 이어나가야만 하는 현실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일까,라고 내가 물었을 때 옆의 동료가 "그래도 하루라도 더 보면 좋잖아요",라고 말했다. 그 짧은 답과 무구한 얼굴이란...... 놈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모색은 차치하고 단순히, 놈이 살아 있다면 어떤 기분일지 내게 묻는 것 같았다. "보고 싶어", 나지막이 흘러나온 내 목소리에 놈의 환영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바로 그때 "어! 살아 있다!",라는 동료의 외침이 귀를 때렸다. 그 소리가 귀보다 눈에 먼저 닿아서 프런트 정면 창을 통째 훑었을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환영과 실사가 뒤섞이는 것을 경험했다. 환영은 볕이 내렸고, 실사는 비가 쏟아졌다. 환영은 나를 향해 달렸고, 실사는 먼 곳을 보고 누웠다. 환영은 살이 올랐고, 실사는 뼈가 앙상했다. 시간이 지나...... 쫑긋한 귀와 꼿꼿이 선 꼬리는 가짜, 축 누운 귀와 처진 꼬리가 진짜임을 알아챘을 때 나는 더 이상 놈을 눈으로만 쫓지 않고 사료와 물을 챙겨서 주차장으로 갔다.






한창 직원들이 오가는 오후 시간대에 가능한 눈에 띄지 않을 심산으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놈을 부른다. 누렁아~, 누렁아~, 마지막으로 불렀던 놈의 이름을 아무리 외쳐도 놈은 움직이지 않는다. 더 가까이 다가갔다. 비에 쫄딱 젖은 채로 시멘트 바닥에 누운 놈에게 손짓을 하니 꼬리와 귀를 굼틀거리며 미동을 보인다. 그제서야 놈의 행색이 하나 둘 자세히 눈에 들어온다.



'너무 야위었잖아......' 처음 보는 놈의 형편없는 몰골에 할말을 잃었다. 털이 파인 채 생살이 벌겋게 드러난 자국이 이마와 발 여러 군데 보인다. 사료와 물로 유인해서 놈의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자 놈은 왼쪽 발을 거의 쓰지 못한다. 기계에 덜 잘린 육고기처럼 발끝은 덜렁거리고, 왼발에 힘을 싣지 못해서 자꾸만 몸이 반대편으로 기운다.



에라 누가 보려면 보라지, 라는 심정으로 놈에게 바싹 다가가서 로비 입구에 먹을 것을 내려주자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사료와 물을 번갈아가며 털어 넣는다. '그동안 다쳐서 움직이지 못하고 어딘가에 누워서 앓았구나, 며칠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시커먼 밤을 홀로 맞았겠어......'



사료를 마시는 누렁이



놈이 감당했을 고독의 양을 나는 감히 잴 수조차 없다. 그런데 밥그릇에 머리를 박고 있던 놈이 갑자기 주저앉고 나를 본다. '차라리 신고해 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너무 지쳐서 못하겠다, 고. 더는 힘들다, 고. 순간 숨이 턱 막히는데 이상하게 머리는 맑아진다.






'이대로 두면 놈은 죽는다. 고기가 되거나, 로드킬을 당하거나, 다른 들개들로부터 공격을 당한다. 배고픈 방랑은 자유가 아니라 지지리 궁상임을 너를 통해 알았다. 내가 자유를 꺾는 인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부터 내 손으로 너의 궁상을 좀 덜고자 하니 양해해라. 나는 너를 신고할 거다.' 그동안 쌓인 모든 고민들이 밖으로 쏟아졌다.



"우리 같이 살자!" 놈을 보고 똑똑히 말했다.



자유를 꺾을지도 모르겠다






*[들개와 노견]은 총 20화로 매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작가의 새 글은 <구독&좋아요&댓글> '3종 세트'로 태어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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