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머나먼 몰타 섬이 고향인 몰티즈의 후예로서 내 반려인간의 두 번째 호구 연애사를 들고 이 땅에 어리석은 연애로 고통받고 있는 다른 집 반려인간들을 구하러 왔다. 훗날 반려인간을 무지개다리에서 만날 일이 두렵지만 그 인간의 이른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을 용기 있게 승화시킨 나라는 개에게 간식 하나를 물리고 싶다.
30대. 여자는 경찰이 된 남자와 헤어지고 공장에 들어갔다. 바닷가 근처에 있는 제약회사에서 수액을 생산하는 일이었다. 눈코입만 드러나는 하얀색 방진복을 입고 수액 커버에 인쇄 작업을 했다. 하루 평균 10시간, 5천 번의 같은 행동을 반복하자 전에 어질러졌던 마음들이 가닥별로 자리를 잡아갔다.
한 달이 지나자 일은 손에 익었고, 퇴근길 동료들과의 술자리가 지루해졌다. 밤시간과 휴무를 혼자 보내기 시작했다. 도시의 소음과 인파를 벗어난 생활에 썩 만족하고 있었다.
'기대와는 정반대인 30대를 이루었네.'
모은 돈도 일도 사랑도 무엇 하나 일군 것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 공장에 들어와서 일찍 돈을 벌기 시작한 어린 동료들은 모두 차가 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님을 봉양하며 그분들이 살 집까지 마련하고 있는 이미 '어른'이었다. 여자의 눈에 그들의 모습은 여자가 공장에 들어오기 전에는 보지 못한 완전히 다른 도형의 삶이었다.
어느 날 사무실 직원이 여자를 호출했다. 공장일과 시골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여러모로 힘써준 사람이었다. 직원 중에 여자를 마음에 둔 남자가 있는데 만나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공장에서 일을 한 지 6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여자도 알고 있는 남자였다. 호감은 있었다. 하지만 설된 마음일까 봐 대답은 하지 않았다.
몸살이 나서 이틀 째 집에서 앓고 있던 날에 남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파서 공장에 나오지 못한 소식을 사무실 직원에게 들었다고 했다. 전할 것이 있다며 여자의 집으로 찾아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아파서 피골이 상접한 모양으로 남자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여자의 대답은 상관이 없었다. 남자가 여자의 집 계단을 오르면서 다시 전화를 했다.
연인이 되었다. '남자가 오는 소리'가 생겼다. 일을 끝내고 여자의 집으로 들어오는 남자의 자동차 소리. 시동이 꺼지고 운전석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면 베란다 너머의 계절은 언제나 한여름이 되었다. 겨울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남자는 집에만 갇힌 여자를 부지런히 불러냈다. 그리고 제 고향에서 가장 멋있고 맛있는 곳으로 여자를 데려갔다. 얼어 있던 마음이 모처럼 타인의 온도로 녹아내리는 날, 이곳에 처음 도착한 날이 떠올랐다. 그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꽝꽝 얼어붙은 길이 거짓말처럼 지글거렸다.
늦여름의 오후, 남자가 여행을 가자고 했다. 여자가 20대에 홀로 여행하던 강원도 오지 마을을 함께 정신없이 누비다가 밤기운이 뚝 떨어진 칠흑 같은 밤을 만났다. 높은 산을 여러 번 넘어서 읍내로 나왔지만 마땅히 지낼 숙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순간 저 멀리에서 온천 모양의 빨간색 조명이 반짝거렸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여관, 옛날에 지어진 낡은 건물이니 남자가 다른 숙소를 알아보자고 했다. 여자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가. 간판이 따뜻하잖아."
다른 건 아무 상관없었다. 손을 잡고, 안고, 입술이 닿은 그 밤. 서로의 살이 온천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뜨듯하게 섞였다.
돌아와서 여자는 공장을 그만두었다. 생산일을 계속하다가는 자신이 그 제품이 될 것만 같았다. 더 외진 곳에 집을 구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남자는 이사를 도왔고 이틀에 한 번 꼴로 여자를 보러 왔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남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새벽에 출근하면서 여자에게 보내오던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여자의 연락을 받지 않았고, 여자의 집에 오던 발길도 끊겼다. 처음에는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기다리기로 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지나자 걱정이 공포가 되어 여자를 짓눌렀다. 남자가 일하는 공장으로 찾아가려던 날에 메시지가 왔다.
"전에 결혼을 했었어. 아이가 생기지 않는 문제로 전 부인과 헤어졌어. 그런데 얼마 전에 와이프랑 연락이 닿았는데 내 아이를 키우고 있대. 미안해. 나 같은 사람 잊고 독하게 살아."
'결혼을 했었는데 이혼을 했고, 아기가 없었는데 아이가 생겼다고? 그리고 뭐라고?'
남자에게 바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메시지에도 답이 없었다. 잠수를 타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아아, 이런 희귀한 이별도 가능하구나. 얼토당토않은 메시지를 반복해서 읽다가 독하게 살아,에서 실소가 터졌다. 황당해서 눈물은 나지 않고, 당장에 남자를 찾아가서 죽이고 싶었다.
어이없는 현실이 다시 여자에게 겨울을 데려왔다. 새벽마다 껌껌한 밤바다에 발을 담갔다. 물에 잠긴 것은 두 발인데 찬 기운이 온몸에 번졌다. 주먹을 쥔 것처럼 언 발을 꽉 오므리고 서서 이런 등신 같은 사랑이 다시는 없기를 바랐다. 바다가 여자의 기도를 오해했는지 이후 여자의 인생에는 결혼과 이혼이 와 주었다.
나의 반려인간에게.
죽이지 그랬어요. 우리가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동네 개들 다 풀어서 물어뜯어 놨을 텐데. 놈을 사랑했어요? 눈이 없어요? 머리가 없어요? 인간 좀 따지면서 만나면 안 돼요? 나한테는 개 좀 가려 만나라면서 그게 안 돼요? 얼마나 아팠어요? 얼마나 울었어요? 새벽마다 바닷가에 혼자 있지 말고 놈을 죽이러 가지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