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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When the shit hits the fan

똥이 팬에 맞아 사방으로 튀어버린듯한 혼란

by 애셋요한

■ 가끔은 정말 그런 날이 있다.


아침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작은 실수 하나가 도미노

처럼 모든 걸 무너뜨리는 날. 이런 날을 영어로,

“When the shit hits the fan.

(똥이 돌아가는 팬에 맞아 사방으로 튄어 버린 듯한 상황)

이라고 하는데, 말만 들어도 정신없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육아라는 전쟁터에선 거의 매일

이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반차를 쓴 아침 7시 40분.

첫째는 학교 준비물로 축구화을 꼭 가져가야 한다는데,

그사이 발이 커서 더이상 맞지 않는다.

“이걸로는 안 돼!” 라며 울상이 된 첫째를 달래고 있을때,

둘째는 “엄마, 오늘은 빨간티 입어야 하는 날이래!” 라고

외친다. 하필이면 그 옷은 아직 건조기 속이다.

막내는 이유도 없이 바닥에 드러누워 울고, 그 와중에 아내는

“오늘은 내가 일찍 나가야 하니까 라이딩 당신이 해야 돼.”

라며 나가 버린다. 잠시 후 나는 회사 미팅에 늦게 출발하고,

점심시간에 아내한테 전화가 온다.

“막내 학교에 실내화 안 가져갔대.”


아, 오늘도 팬에 똥이 한바가지 튀어버린 찝찝함이다.

이런 일은 어쩌다 한 번 있는 게 아니다. 세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에게 ‘계획대로 되는 하루’란 전설에 가깝다.

아이들 학원 시간 바뀌는 건 늘 있는 일이고, 라이딩

스케줄이 꼬이면 우리는 어디에 있든 전화기를 붙잡고

“누가 누구 데려오고, 어디에서 태워주고, 저녁은 뭐 먹고”

실시간 작전 회의처럼 주고받는다.

가족의 경조사, 회사의 마감 일정, 아이들의 시험 기간과

발표 준비가 절묘하게 같은 주간에 겹칠 때도 있다.


그리고 어느 날엔, 내가 담당해서 아이들 학원 시험을 준비

시켰는데 아이 성적이 예상보다 낮게 나왔다는 문자가 왔고,

그 문자를 보며 돌아오는 길에 회사에서는 ‘이번 인사에서

빠졌습니다’라는 말을 듣는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모든 게 다 꼬인 느낌. 열심히는 살고 있는데,

결과는 생각보다 아쉽고 가족에겐 미안하고 나 자신은 지쳐

있다. 하지만 그런 날일수록 내가 되뇌는 말이 있다.


삶의 밸런스를 유지한다는 건, 모든 걸 잘 해낸다는 뜻이

아니다.”


때로는 아이 한 명에게 더 시간을 쓰면 다른 아이가 삐지고,

회사 프로젝트에 집중하면 가정에 소홀해지고, 부부 사이의

대화를 회복해도 사소한 집안 일에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모든 걸 ‘완벽히’ 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진짜 중요한 건, 엉망진창이 되었을 때 포기하지 않고 하나씩

주워 담는 것. 아이들 스케줄이 꼬이면 다음부턴 달력에 큰

글씨로 적어두고, 준비물을 빼먹으면 ‘○팡 장바구니’에

알림설정을 해놓고, 라이딩 스케줄이 안 맞아서 반차건

육아시간을 쓴 서로에게 “고생했다” 한마디 더 해준다.


인생은 늘 정리된 노트가 아니라 삐뚤빼뚤 낙서 투성이

스케치북 같은 거다. 그리고 때때로, 그 낙서들 속에 우리

가족만의 패턴과 리듬이 숨어 있다. 그래서 오늘도 여기저기

튄 똥을 닦으며 생각한다.


“그래도 다 닦이면 괜찮다.”

“내일은 똥이 덜튀게 선풍기라도 미리 꺼놓자.”





이 글이 공감되셨다러주시고,
여러분의 ‘똥이 선풍기에 맞아서 여기저기 튀겨버린 날’은

언제였는지도 댓글로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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