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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버 Sep 08. 2022

왜 나는 운동을 못할까?

인정하기 싫은 나의 부족한 모습. 완벽을 버리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예전엔 열심히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사는 것은 과정이고 잘 사는 것은 결과인데, 특히나 나는 결과가 훨씬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암만 노력해도 결과가 엉망이면 그건 그냥 엉망인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 사고방식인 나에게 '엉망'으로 분류된 활동에는 단연 체육활동이 탑티어. 성적을 위해 꾸역꾸역 연습하긴 했지만, 참혹한 수행평가 결과와 그것보다 더 참혹한 자존감 파괴가 더해지면서 나에게 체육이란 기피대상 1순위가 되었다. 살기 위해 운동은 해야 한다고 하는데. 여태껏 쌓아올린 '난 체육 젬병' 고정관념이 생각만큼 잘 깨지지 않는다.


맨 처음엔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배구를 해 보았다. 코로나 이후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곤 해도 교직사회에서 배구는 중요하니까. 배워놓으면 나쁘지 않겠지?

음. 역시 단체운동은 안 되겠군. 나의 부족함이 팀의 패배를 불러와.

리시브는 할 수 있지만 토스는 할 수 없어. 토스가 아니라 공 따귀때리기만 잘 할 수 있어. 그리고 나의 양 손목과 팔뚝에 아로새겨지는 보라색 은하수(a.k.a. 피멍).


그 다음은 요가와 필라테스를 해 보았다. 그래! 난 동적인 운동을 잘 못하니까 정적인 운동을 해 보는거야!

아차. 나는 태어날 때부터 유연성이 없었다는 것을 깜빡했다. 마치 연못에서 갓 끌어올린 물고기처럼 파들파들 떨며 동작을 따라해 보았지만, 잔뜩 힘을 준 채라 코어근육은 커녕 승모근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발달했다. 와! 근육을 얻었어! 그리고 목 길이를 잃었어. 가뜩이나 짧았는데! 왁!


난 기본체력이 없으니 심폐지구력을 기르자며 혼자서 달리기도 열심히 해 봤다. 어플의 힘을 빌리니 혼자 뛰면서도 심심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었다. 어플에서 쉬지도 않고 나에게 달리기에 대한 정보를 떠벌떠벌 알려주기 때문이다. 다만 늘 같은 곳을 달리다보니 내가 커다란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외에도 난 무척이나 많은 운동에 도전해왔다. 스키, 스노보드, 개인 PT, 홈트, 배드민턴, 골프 …

도전의 결과는 위에 설명했던 종목들과 다를 바가 별로 없다. 뭔가 엉성한 자세와, 뭔가 엉성한 실력이 어우러진 대환장파티. 나는 점점 위축되었고 가뜩이나 앞으로 굽은 나의 라운드숄더는 더더욱 말려들어가고 있다. 그나마 조금 재미있었던 것은 골프지만, 초반 3-4개월 레슨을 꾸준히 받으며 매일 나가는 것이 워킹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체육에 대한 불평투성이인 이 글을 인내심을 발휘해 읽어보면, 내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체육을 싫어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애초에 좋아한 적이 없으니 꾸준히 하기도 어렵고, 재미를 붙이지 못하니 연습시간이 줄어들어 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 늘 반복되는 루틴이고 늘 반복되는 좌절이다. 맨 처음 이야기했던 '결과중심적'인 내 사고방식은 여기다 기름을 더 부어버린다. 활활 타올라라 절망아. 너의 몸은 구제불능이니라.


하지만 요즘 들어, 결과라는 녀석을 내 삶에서 좀 놔줘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사실 예전부터 느껴왔던 것이지만 나는 완벽이나 정석에 대한 강박이 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의 결과는 평균 이상이어야 하고, 내 삶은 남들이 생각하기에 적어도 평균치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삶에서 전혀 필요없는 무의미한 기준이다. 삶에 평균이 어디 있을까. 그 기준이란 너무나 주관적이고, 사람마다 다르니 관점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무시하기 쉽지 않다. 수많은 에세이와 자기계발서가 얘기해주는 '완벽은 없어요!' '당신 존재만으로도 소중합니다.' '너무 애쓰지 마세요.' 등의 따뜻한 이야기들로는 좀처럼 부서지지 않는 완벽이라는 이름의 옹벽. 이 옹벽이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어린 나에게 딱 들러붙어서 내 자존감을 참 오래도 갉아먹었다.


세상 만사 내 마음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가 직면한 세상은 점점 복잡해졌고, 내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하게 벗어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졌다. 특히 출산하고부터는 도무지 내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도대체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부터 시작해서 인생에 대한 고뇌를 그리도 많이 했다.(약간의 새벽감성과 눈물은 덤. 고맙다 맥주!)


돌이켜보면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완벽했다 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흠결은 있었고, 뭔가를 모두 잘하는 먼치킨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먼치킨이 되고 싶고 그런 내 가치를 증명하고자 이것저것 시도도 해 보고 있다. 시도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다만, 시도를 꾸준히 이어갈 동력을 어디서 끌어올 것인지. 그걸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취미들의 무덤만 늘어나는 꼴이 된다.


결국 성장과 과정. 느리긴 해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라는 것에 대한 희망이 곧 동력이 되어야 할텐데.

아니면 그냥 그 활동을 하는 것 자체로도 행복할 만큼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으면 정말 좋겠다.

아마 이런 소망도 이루어지지 않을 꿈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희망을 가지면 좋은 거니까!

그런 희망을 갖고서 오늘도 고민해 본다.


이런 우당탕탕 몸치도 할 수 있는 운동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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