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자기 전에 먹으면 좋은 음식이란 건 없다. 잠들기 1시간 전후로 음식물을 섭취하면, 자려고 누웠을 때 소화 중인 음식물이 위 안에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소화를 위해 분비된 위액이 음식과 뒤섞여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위에 고여있거나 역류하여, 역류성 식도염 또는 위염의 원인이 된다. 물과 같은 액체류 역시 위에 들어가면 위산 분비를 촉진시키기 때문에, 잠들기 전엔 물조차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오늘과 같이 저녁을 부실하게 먹은 날이면 잠에 들어야 하는 이맘 때 쯤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작년, 역류성 식도염 + 위염 + 십이지장 궤양 3종 세트로 크게 고생한 이후로, 될 수 있으면 밤에는 뭘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가끔 배가 너무 고파서 잠에 들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지못해 물배를 채우거나, 그나마 위에 좋다는 양배추즙이나 꿀물을 마셔서 배고픔을 모면한다. 그렇게 뭐라도 먹어서 주린 배를 조금이라도 채우고 나면 상황은 조금은 나아지지만, 그 순간부터 1시간 동안은 잠들지 못하게 된다. 위산 역류를 막으려면 조금이라도 소화를 시키고 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왕 바로 잠들지 못할 거라면 뭔가 좀 더 만족할 수 있는 것으로 먹자' 라는 생각에 '자기 전에 먹으면 좋은 음식' 따위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번 검색을 해보았다. 역시나 검색 결과는 정말 '자기 전에 먹으면 좋은' 음식이 아니라, '잠들기 위해서 먹으면 좋은' 음식들만 줄줄 내뱉고 있다. 그럼 그렇지. 그래 어차피 잠은 자야 하니까, 잠 드는데라도 도움이 되는 걸로 먹는 게 좋겠다. 그나마 양이 적은 견과류가 좋겠군.
편의점에서 요즘 유행하는 '한 줌 견과'류를 사려고 봤더니, 한봉지에 딸랑 25g이다. 정말 지나치리만큼 이름에 충실하다. 요 한줌짜리 봉지가 무려 1500원씩이나 한다. 캔에 들어있는 안주용 아몬드 135g이 3000원인걸 생각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가격이다. 국산 과자들 질소 포장으로 말들이 많은데, 이 녀석은 한 술 더 뜨는 것 같다. 과자는 가공이라도 했지, 그냥 생 견과들 조그맣게 포장만 해놓고. 남대문에 가면 같은 가격으로 이거 열배는 넘게 살 수 있을텐데. 그렇게 투덜대면서 한 줌 견과 한 봉지를 한 입에 털어넣었다.
역시 이걸론 도저히 배가 차지 않는다. 함께 사온 안주용 아몬드를 주워먹는다. 간이 되어있어서 짜다. 목이 마르다. 냉장고에 있던 플레인 요거트를 퍼먹는다. 포장을 보니 견과류랑 같이 먹으면 맛있단다. 안주용 아몬드를 위에 뿌려 같이 퍼먹는다. 사실 이 쯤 되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다 먹고 나니 그다지 배도 부르지 않고 뭔가 이거저거 조금 조금 섞어먹었더니 뒷맛도 뒤죽박죽이고 만족스럽지도 않다. 그래도 내일을 생각하면 더 먹으면 안될 것 같아서 멈췄다. 자 이제 앞으로 1시간은 잠들지 않고 곧게 앉아서 버텨야 한다. 뭘 할까 생각하다가 이런 쓸데 없는 생각들이나 끄적 거리다 보면 시간이 조금은 빨리 가지 않을 까 싶어서 글을 써본다. 열심히 썼는데 아직 30분밖에 안지났다. 눈꺼풀은 벌써 감기기 시작하는데... 글을 처음부터 한번 다시 훑었는데도 5분밖에 안지났다.
냉장고에 맥주가 3캔이나 있지만 마시지 않은 내가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