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학 리뷰
사실 내가 평생 동안 이런 제목의 책을 사서 읽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린 시절, 막연히 돈을 좇는 것에 대한 반발감을 갖고 있었어서 대놓고 돈을 추구하는 책들을 혐오했다.
책을 한참 읽던 시절에 내가 주로 읽었던 책들은 소설, 철학, 미학 등에 한정지어져 있었고 형이상학적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집중해서 한참을 들여다보다 잠깐 세상 밖으로 나오면, 세상이 참 낯설게 느껴졌다.
세상이 낯설게 보이는 느낌은 현실감각을 더디게 만들었고, 먹고 사는 것 이상의 것에만 가치가 있다고 믿게 만든다.
그런 쪽으로 푹 젖어 있는 머리가 우회도 아닌 직접적으로 '돈'을 언급하는 책을 찾아봤을 리 없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
편협하게 아집을 부린 건 나였고, 뭣도 모르면서 다 아는 척 폼을 잡고 있었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그러니까 서평지 <출판저널>에서 기자로 일할 때였다. 그때 기자들은 각각 분야를 맡아서 신간 목록을 작성했는데, 나는 실용과 경제경영을 담당했다. 문학과 인문 쪽은 아무래도 다들 탐내는 책들이 많아서 막 잡지사에 들어간 내가 맡기도 힘들었지만, 내심 문학 쪽으로는 관심도 두지 말자고 다짐하던 시절이었다. 대신에 나는 일과 술에만 관심을 뒀다. 하루 종일 원고 청탁하고 취재하고 책 읽고 기사 쓰다가 저녁이면 동료들과 인사동과 안국동 주위의 술집과 노래방을 전전하면서 날을 보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사로 실용서와 경제경영서를 열심히 읽었는데, 그 책들 속에는 진작부터 내가 알고 있었어야만 할, 인생의 중요한 진리들이 빼곡히 수록돼 있었다.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을 설득하고, 내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내려지도록 대화하고, 목표가 되는 최종적 시간에 이르기 위해서 일상을 재배치하는 방법들. 그랬군. 그랬던 것이군. 남들은 다 아는 이런 것들도 모르면서 잘난 척하면서 잘도 살았군.
김연수 - 문학적 자서전 <이 세상 그 누구도 대신 써주지 않는 15매>(2009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에 붙인 문학적 자서전)
투자를 공부해 보겠다고 여러 서적들을 읽을 때, 특히나 <돈을 이기는 법>을 읽을 때 이 구절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랬군. 그랬던 것이군. 남들은 다 아는 이런 것들도 모르면서 잘난 척하면서 잘도 살았군.'
사실 아직까지도 알바트로스가 주로 하고 있는 파생거래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몰라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롱 포지션을 갖고 가는 일반적인 주식 매수/매도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이고, 주식뿐만 아니라 투자를 대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여러 가르침 속에서도 나의 한정된 식견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이해한 바는 다음과 같다.
시장에서 퇴출당하지 말고 남아 있어야 한다.
알바트로스가 세 번의 청산을 당하면서도 시장에서 퇴출당하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었던 보루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현금 확보 비율 혹은 손실의 상한선과 같은 자신만의 리스크 관리 원칙과 이것의 과감한 실행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무형의 보루로서, 그의 실력 혹은 역량이다.
지속적으로 주식투자 방송을 하면서 현금흐름을 창출해 나간 것이 단단한 보루 역할을 해줬다.
또한 본인에 대한 믿음에서 기반하는 투자를 대하는 태도와 그것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자본금을 투자한 그의 지인들 또한 무형적 보루였다.
흔히들 시장에서 퇴출당하지 않고 남아 있어야 흔히 오지 않을 기회를 누릴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일정한 현금 비중을 갖고 있길 권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쉽게 계산할 수 없는 무형의 자산들도 최후의 보루가 되어 시장에서 퇴출당하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게끔 지탱해 준다.
알바트로스는 투자에 적합한 심적 '그릇'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승부가 확실한 투자인 본인의 일에 집중하라고 권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각자의 그릇은 물이 넘쳐흐르거나 그릇이 깨져봐야 깨닫기 때문에,
나의 그릇을 알기 위해서든, 시장에 남아 있기 위해서든, 길의 끝까지 가보려면 나의 일을 점점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