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얼마 전, 친구인 C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 친구와는 몇 년인지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자주 보는 사이라 연락이 대수롭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이 재밌었습니다.
너 정확히 무슨 일한다 그랬지?
오랜 시간 함께 했을 뿐이지 안 친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아닙니다.
바로 전달('25년 7월)에 함께 통영으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 웃픈상황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친구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에게 일 얘기를 하기 싫어하는 것이 주요 원인입니다.
그리고 C의 직업 특성상, 제가 하는 일은 비교적 시시해서 C가 하는 일 얘기를 듣다 보면 일 얘기를 더욱 아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C를 포함한 오랜 친구들과 모였을 때, C의 일 얘기에 견줄만한 흥미로운 일 얘기는 경찰인 친구의 사건 수첩 정도입니다.
C는 20살 때부터 배우의 길을 걸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여러 영화, 드라마, 뮤지컬에 출연하며 본인의 길을 견뎌내며 헤쳐나가는 중이었습니다.
배우로서의 수입원은 변동성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어서, 본인의 역량과 경험을 살린 일들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 현장에서 음향 조율을 비롯해 제작 환경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본인의 업체를 설립하여, 독립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네가 OOOO에서 ESG 담당한다고 했나??
저는 C의 입에서 'ESG'라는 단어가 나온 게 참 낯설었습니다.
제가 '나는 OOOO의 ESG를 담당하는 게 아니라, OOOO의 고객사를 대상으로 ESG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렇게 디테일한 부분을 정정하는 게 스스로 얼떨떨했습니다.
와우 이게 뭐야 이렇게 가까이 있었네!
집에서 가위를 찾아 한참을 헤매다가 본인 손에 들린 가위를 본 것 마냥,
C는 황당함과 안도감, 놀라움이 섞인 채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C의 프로덕션(혹은 프리프로덕션)* 이 기존 업체와의 차별점으로 ESG를 추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 영화, 드라마, 광고 등 영상 콘텐츠 작품에 필요한 제반을 조성하고 촬영 환경을 기획 및 관리하는 업무
현재의 제작 현장은 여러 외주업체가 분산되는 등의 원인으로 명확한 운영 체계가 없고, 이에 따른 ESG 관련 리스크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단 제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만나서 얘기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계획과 열정의 기관차인 C는 약 3주 전에 약속시간(분 단위 포함)과 장소까지 확정을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