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몇 주 전 중소기업의 2세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공급망 ESG와 평가대응'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과 강의 내용을 공유합니다.
약 한 달 전, 소규모의 기계 제조업 업체인 N기계와 컨설팅을 진행했습니다.
국내의 중소 제조업이 흔히 그렇듯, N기계도 창업자이자 대표님이 큰 기업에서 해당 분야의 경험을 쌓고 퇴직하여 개인사업자로 시작, 이제는 열댓 명의 직원을 둔 회사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진문물에 밝은 그의 아들과 딸들이 노무, 재무, 인사, 안전관리, 영업관리, 총무 등 모든 사무직을 도맡아 하는 가족경영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론, 이 정도 규모의 업체에게는 ESG 컨설팅이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다음 달 매출과 존속기업으로서의 운영이 중요하지, 모호한 개념인 ESG는 너무 먼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두 가지의 경우는 예외입니다.
첫 번째는 규모와 상관없이 대표가 경영철학 관점에서 ESG, 지속가능경영 등에 뜻이 있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고객사(납품처)가 ESG 평가에 응하라고 요구한 경우입니다.
N기계는 첫 번째에 해당했고, 그 뜻은 대표님과 대표님의 경영권을 승계할 아들인 K과장님(현재는 부장님)도 동일했습니다. 창립자와 2세 경영인의 뜻이 동일한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보통 경영권을 승계할 2세 경영인이 ESG 개념에 더욱 친숙하고 컨설팅을 받을 정도로 관심이 있지만, 창업자이자 1세대 대표님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어쨌든 간단한 ESG 경영 진단을 완료하고, 최종보고를 마친 뒤 공정을 둘러보았습니다.
초창기 한 대로 시작하여, 하나하나 기계를 늘려갔던 역사를 재밌게 들었습니다. 대표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공장을 나오려던 찰나, 2세 경영인인 K과장님께서 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셨습니다.
요지는,
N기계가 위치한 S시에는 유사한 기계 제조업들이 몰려있었습니다. 이 업체들 또한 N기계와 같이 가업승계를 앞둔 업체들이 많아, S시 내 2세 경영인의 모임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2세 경영인 모임을 의미 있게 운영하고자 외부 강사를 초청하여 강의를 듣고는 하는데, 다가올 모임에 맞춰 저에게 ESG 경영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해 줄 수 있는지 여쭤보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뜻과 관심을 주시는 분과, 이런 분들이 모이신 조직을 보면 반가운 마음에 무엇이든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샘솟습니다. 하지만 저는 프리랜서나 조직의 대표가 아니고, 팀에 속한 일개의 컨설턴트이기 때문에 팀과 회사에 이익이 되는지 먼저 판단해야 합니다.
다행히 때마침 제가 속한 팀은 연간 컨설팅 진행 횟수를 늘려야 하는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K과장님께서 주신 제안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어 그 자리에서 기쁘게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팀 내에서도 좋은 인연이라 여겼고, 순조롭게 강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보니, 크지 않은 일을 착수하는 것 또한 순조롭지 않은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강의 한 달 전, N기계의 K과장님께서 사전 미팅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강의 몇 주 전, S시의 카페에서 2세 경영인 모임의 회장님, 총무님과 첫 인사를 나눴고, 회장님과 총무님 모두 저와 비슷한 또래인 30대 초중반으로 보였습니다. 그만큼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며 강의의 주제를 좁혀나갔습니다.
강의의 주제, 시간, 대상 등 여러 요건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강의를 진행함으로써, 강의를 제공하는 저와 저희 팀 그리고 회사에게 어떠한 이득이 갈지 고려하며 단도직입적으로 서로가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합의하려는 회장님의 태도였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으나, 제가 속한 조직의 특성상 강의료를 저나 회사에게 별도로 지불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황이었습니다. 그간 제가 겪어온 고객사들은 저희 조직이 제공하는 무료 컨설팅의 대가가 있음을 짐작하면서도 먼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낯선 느낌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