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연초에 회사 짬밥 메뉴로 떡국과 함께 포춘쿠키가 나왔다.
내가 깐 포춘쿠키에는 "결과 뿐만 아니라 그 과정도 중요합니다."라는 운세를 가장한 경고성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인사팀에서 보내지 않았을까 의심이 들었다.
회사를 무언가의 최종 목적을 거쳐가는 과정으로서 여기는 마음가짐이 극에 달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투자에서는 그 과정의 유익함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왜 투자뿐만 아니라 그 근본인 일상생활을 가능하게끔 떠받치고 있는, 그야말로 찐 과정인 회사 생활은 왜 업신여기는가?
회사라는 과정 끝에 얼마나 창대한 목적과 결과가 있길래?
요즘은 간만에 내가 오롯이 핸들링 하는 프로젝트가 아닌, 팀원들의 의견을 듣고 상사의 결제를 받아야 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 회사 생활하면서 느꼈던 그 갑갑함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이전보다 압박감이 훨씬 덜한 상황에서도, 나는 쉽게 피곤해 했다.
계속해서 돌아간다고 느껴졌고, 돌고 돌아 도착한 결과물마저도 큰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 쓸데없는 일처럼 여겼다.
겸손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일만 하게 해달라고 최저시급 받으며 감정 기복, 화풀이 받아내던 게 불과 5년 전이다.
그 사이에 나는 얼마나 역량이 향상되었길래 일을 가볍게 여기는지 모르겠다.
최저시급을 받을 당시에도, 일이 익숙해지자 내가 있을 곳은 더 나은 곳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연봉/거리/미션/배울점/동료(문화) 같은 기준을 세워놓고, 당시 다니던 회사를 중간값으로 설정한 뒤에 이직하고 싶은 회사들을 기준에 맞춰 평가해 보았다. 나름의 가중치를 두었으나, 연봉에 제일 많은 가중치가 들어가 있었으니 연봉이 엔간히 높은 이상 당시 다니던 회사보다 종합적인 점수가 더 크게 나왔다.
점수가 1점이라도 더 크면, 며칠 밤을 새워가며 이력서를 썼다.
그렇게 몇 번의 이직을 거쳐 현 직장에 종착했다.
내 잦은 이직을 지켜본 친구들은 나에게 농담 삼아 말했다.
"다음엔 NASA라도 갈려고?"
갈 수 있는 확률이 전혀 없으니 들을 때마다 웃겼다.
근데, 가만 보니 저 물음이 나의 성격 혹은 내가 갖고 있는 결함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좋은 표현으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나쁜 표현으로는 현실에 만족할 줄을 모른다. 즉, 결함을 찾아 나선다.
"아 물이 반밖에 안 남았다. (그러니 새로운 물을 채우러 떠나야 한다.)"의 사고방식이다.
이런 마음으로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고,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목적지에 도착한들, 행복할까?
행복할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얼마나 갈까?
그리고 그곳까지 가기 위해 어떤 것들을 희생했을까?
내가 주말 동안 운동과 글쓰기 같은 해야 할 일들에 쌓여 조바심을 내고 있을 때, 아내는 떡볶이가 맛있다고 반나절 동안 행복해하며 춤춘다.
(그만큼 어이없는 일에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순수하게 경이롭기도 하고,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그리고 길러질 수 없는 능력같이 느껴져 씁쓸하기도 하다.
의미있는 과정으로서 회사생활을 소중히 여겨보자는 취지의 반성문이었는데, 내 근본에 대한 반성문이 되었다.
바꿀수 없다면, 나에게 맞는 행복을 찾아나서는 수밖에..
행복은 누구에게나 가시밭길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