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속은 알 수 없다
몇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쓰레드(Threads)라는 SNS에 가입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동의하기 힘든 이야기를 하는 글이 자꾸 "For You"에 뜨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웠다. 왜 그러지? 내 주변에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데? 그러다 불현듯 얼마 전에 팔로우하기 시작한 계정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그 계정을 언팔로우했고, 그랬더니 신기하게 곧바로 극단적인 내용이 피드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필자만 해도 학생들 앞에서 강의할 때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처음으로 맡은 과목의 강의 노트를 만들 때면 잘 이해되지 않는 개념들 때문에 골치를 썩인다. 교수로서의 가면이 있는 것이다. 필자가 언팔로우한 계정 역시 가면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지역의 맛집을 소개하는 계정이었지만, 그 계정의 소유자는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가면의 두께가 더 두꺼워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극단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SNS에서 보고 싶은 것만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니, 다양한 관점을 가지기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인터넷에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기 용이해지다보니, 그들끼리 이야기하다가 이상한 주장을 사회에 나와 대놓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사들도 직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SNS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회사에서 사원들의 SNS를 사찰하는 일은 생각보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러다 보니 반대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회사에 SNS 사용 유무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대학원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는,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장과 사원의 관계와 유사한 점이 많다. 그렇다보니 대학원생들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교수들도 있기는 한 모양이다. 그러나, 지도교수와 학생 사이에는 적당한 선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만약 지도교수가 학생들이 SNS 계정을 주고 받는다면, 공과 사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고,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도교수가 학생에게 일을 시켰는데, SNS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글이 올라온다면, 지도교수 입장에서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