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조미료를 치듯 반도체도 불순물을 넣어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가운데 순수하지 않은 것이 많다. 지금 필자가 끼고 있는 금으로 된 결혼반지 역시 온전히 금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순수한 금은 너무 무르기 때문에 하루 종일 끼고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다. 여러 군데서 쓰이는 철 역시 시간이 지나면 산화가 되기 때문에 다른 물질을 섞어 합금으로 만든다. 스테인리스(stainless)가 대표적이다. 반도체도 순수한 물질을 쓰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완전히 순수한 반도체는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쓸모가 없다. 반도체를 소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히 불순물을 집어넣어 전기가 잘 흐르게 만들어야 한다.
실리콘의 경우에는 전기적 특성을 좋게 만들기 위해 인(P)이나 붕소(B) 불순물을 집어넣는다. 원자번호 15번인 인 원자는 깊은 곳에 10개의 전자가 있고, 5개의 전자를 다른 이웃과 공유할 수 있다. 4개의 이웃 실리콘 원자에 전자를 나눠주고 나면, 1개의 전자가 남는데, 이 전자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이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전자가 있어서 전기장을 걸어주면 전하를 띈 입자의 흐름, 즉 전류가 생긴다. 반면 원자번호 5번인 붕소 원자는 양성자 5개, 전자가 5개 있는데, 깊은 곳에 전자가 2개 있고 이웃한 원자와 공유할 수 있는 전자가 3개 있다. 붕소가 실리콘 원자를 대신해서 자리하게 되면, 4개의 이웃에 3개밖에 주지 못한다. 이 빈자리를 다른 곳에서 전자를 꿔와서 전자를 주게 되며, 꿔온 전자를 정공(hole)이라고 부른다. 이 상황은 고체에 양전하가 돌아다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빚이 생기고, 이것이 시중에 돌아다닐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달까?
띠 이론에서는 실리콘에서 인 원자가 전도대 바로 밑에 채워있는 에너지 준위를 만들고, 전자가 손쉽게 전도대로 올라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전자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붕소 원자는 가전자대 바로 위에 비어있는 에너지 준위를 만들고, 이것이 가전자대에서 전자를 손쉽게 가져올 수 있다.
전자의 농도는 n이라고 많이 표시하고, 정공의 농도는 p로 많이 표시한다. 인과 같이 전자를 주는 불순물을 주개(donor), 혹은 n형 도판트(dopant)라고 부른다. 반면 붕소와 같이 전자를 받는 불순물을 받개(acceptor), 혹은 p형 도판트라고 부른다. 주개가 많이 도핑된 반도체는 n형 반도체, 받개가 많이 도핑된 반도체는 p형 반도체가 된다. 반면 전자와 정공의 개수가 같은 반도체는 고유 반도체(intrinsic semiconductor)라고 부른다. 이 세 가지 반도체가 반도체 소자를 만드는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