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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박 Mar 15. 2024

띠 이론과 반도체

띠틈의 크기가 물질을 구분하는데 쓰인다.

수소 분자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실리콘 원자들이 결합함으로써 수많은 에너지 준위를 만들게 될 것이다. 원자나 분자의 경우에는 에너지 준위가 건물의 층수처럼 번호를 매길 수 있었는데, 실리콘 결정처럼 원자들이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배열된 경우는 에너지 준위들을 기술하기 위해 한 가지 주소가 더 필요하다. 비유하자면, 아파트가 한 동 있으면 몇 호인지만 알면 주소를 표현할 수 있지만, 여러 아파트가 있는 단지의 경우에는 어느 동인지 추가로 표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체에서 전자가 처한 상황이 이와 유사하며, 에너지 준위를 아래 그림 안의 수식과 같이 표시하게 된다.

(좌) 원자와 (우) 고체에서의 전자의 에너지 준위 비교.

여기서 k는 파수 벡터(wave vector)라고 불리며, 비유하자면 몇 동인지 나타내는 값이다. n은 주어진 파수 벡터에 대해 몇 번째로 높은 에너지 준위인지 나타내는 번호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전자의 층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인접한 파수 벡터에 대해서 에너지 준위는 이어져있다. (수학 용어를 빌리자면 말하자면 연속적이다.) 이렇게 연결된 에너지 준위들을 띠(band)라고 부른다. 수소 분자에서 살펴본 것처럼, 완전히 채워진 띠와 비워진 띠 사이에 간격이 있다면, 이를 띠틈(band gap)이라고 부르며, 이런 물질을 반도체, 혹은 부도체라고 부른다. 완전히 채워진 띠를 가전자대(valence band), 완전히 비워진 띠를 전도대(conduction band)라고 부른다.

(왼쪽) 띠 사이 간격이 없는 경우, (중간)  띠 사이 간격이 작은 경우, (오른쪽) 띠 사이 간격이 큰 경우. 전자는 푸른색 공으로 표현하였다.

띠 사이의 간격이 작다면, 가전자대의 전자가 전도대로 올라가 꽤 자유롭게 물질에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수소 원자에서처럼 빛을 흡수해서 올라갈 수도 있고, 열에너지 때문에 올라갈 수도 있다. 이렇게 전자가 올라가게 되면 위의 그림에서처럼 (흰색 원으로 표시된) 전자가 빈 자리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빈 자리를 특별히 정공(hole)이라고 부른다. 반면 띠 사이의 간격이 크다면, 그런 일이 매우 드물게 일어나기 때문에 전류가 흐르지 못한다. 즉, 반도체와 부도체의 차이는 띠틈의 크기의 정도에 따라서 구분되는 것이다. 딱 떨어지는 기준은 없으나, 대체로 3 eV 이하의 물질을 반도체라고 부른다. 띠틈이 없는 물질, 즉 완전히 채워지지 못한 띠가 있는 물질은 도체가 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이아몬드 구조를 가진 실리콘은 모든 전자들이 결합에 참여하게 되며, 결합 오비탈만을 채우게 된다. 실리콘에서 결합 오비탈로 구성된 띠와 반결합 오비탈로 구성된 띠 사이의 간격은 1.12 eV 정도로, 띠틈 에너지를 빛의 파장으로 환산하면 1100 nm 정도가 된다. 나노미터(nm)라고 불리는 이 단위는 반도체의 회로 선폭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위이며, 미터로 환산하면 10의 마이너스 9 제곱미터다. 앞에서 수소 원자의 경우처럼, 실리콘은 띠틈 이상의 에너지를 가진 빛 (혹은 단파장의 빛)을 흡수할 수 있다. 아쉽게도 띠틈의 에너지를 가진 빛은 방출하기가 어려운데, 이는 가전자대에서 가장 높은 에너지 준위의 파수벡터와 전도대에서 가장 낮은 에너지 준위의 파수벡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전도대의 최소 에너지 준위에 위치하고, 정공은 가전자대의 최대 에너지 준위에 위치하는데, 둘 사이의 파수벡터가 동일하지 않으면 내려올 수가 없다. 고상하게 말하자면 결정 운동량을 보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빛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좌) 가전자대 최대값과 전도대 최소값이 같은 파수벡터를 가지는 경우, (우) 두 값이 다른 파수 벡터를 가지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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